[소설]오래된 정원(279)

  • 입력 1999년 11월 23일 18시 51분


당시에는 우리의 활동이 주춤했지만 그 일은 깊은 인상을 남긴 게 분명했어요. 그 증거로는 권양 성고문 사건이 터졌을 때 우리가 공소장 내용을 프린트해서 소식지로 알렸는데 공원들은 남 녀 모두가 정부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를 욕설로 나타낼 정도였어요.

언니, 우리가 살아오던 그곳은 똑같은 압제와 부자유 속에 있지만 그래도 겉으로는 시민사회의 양식이라는 것이 체면치레로나마 있었지요. 여긴 이중의 굴레 속에 갇혀 있는 곳이에요. 아마 바깥에 조금의 햇빛이라도 비치게 된다면 여기선 칠흑같던 어둠이 부옇게 밝아지는 상태로는 될거예요.

지난 유월은 찬란했지만 우리들에게는 장마철에 잠깐 개인 날에 불과했답니다. 그러나 시민항쟁의 힘이 우리들 싸움의 든든한 토대가 되었던 것만은 분명해요. 우리는 칠 월부터 파업을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노동자들은 전국 각지에서 그들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꿈틀거리기 시작했지요.

우리 공장 사람들의 변화는 여러 형태로 나타났는데요, 먼저 부녀회의 변화예요. 반장이나 직장 정도만 되어도 총무나 과장이나 대리 따위들 보다도 더 관리자 행세를 하고 현장에서 나이가 많든 적든 공원 출신으로 기능직에서 관리자가 된 사람들 중에는 먹물들 보다 더욱 동료들을 마구 대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예요. 오후 두 세 시 쯤이 공장에서는 제일 힘든 시간인데요 점심 먹고나서 몸이 나른해지고 작업 능률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때예요. 아줌마 하나가 아마 그날 생리였는지도 몰라요. 화장실을 한번 갔다가 두번째 갈 때에 뭐라고 잔소리를 들었거든요. 그런데 아마 못견디겠던지 세 번째로 작업대를 떠나려 하자마자 반장이 소릴 질렀어요. 야이 개 쌍년아 점심에 물을 처먹지 말든지 낼부터 회사 때려치우든지 하라고 말이죠. 늘 듣던 말이라 아줌마는 얼굴을 숙이고 말대꾸도 못하고 섰는데 신자 언니가 갑자기 기계 뒤에서 쫓아나오며 반장의 멱살을 쥐는 거예요. 야 너는 니 에미 애비두 없냐. 아줌마가 몇 살인데 욕을 그 때위로 하는 거야. 니가 사람이냐. 그랬더니 적반하장이라고 녀석이 신자 언니 따귀를 갈겼어요. 여공들은 모두 쥐죽은 듯이 지켜보고 섰는데 꼼짝도 않고 지켜보던 아줌마가 손에 길다란 동 파이프를 집어들고 반장에게 달려들었어요. 죽이겠다는 거예요. 녀석이 달아나기 시작했죠. 여공들은 모두들 사방에서 혼을 내라, 때려 줘라, 하면서 발을 구르고 야단이 났지요. 작업장 안을 이리저리 도망 다니던 반장은 간신히 밖으로 빠져 나갔고 우리는 기계를 멈추고 농성을 시작했어요. 반장이 사과할 것과 사장 이하 관리자들이 폭언과 폭행을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제도적인 규칙으로 정하라는 정도였습니다. 상무와 부사장이 달려오고 사과를 받고 해명이 따르고 하는 법석이 있고 나서도 우리의 분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가서 철야 중에 사고가 일어났어요. 계획에도 없던 철야였는데 여름철에는 냉방기의 성수기라서 봄부터 에어컨 철야가 시작 되거든요. 작업 중에 어떤 이가 졸다가 콘베이어에 손이 잘리고 말았지요. 그가 병원으로 실려간 뒤에 남자들은 모두 작업을 중단하고 주말 철야작업을 철폐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런 일은 작은 일들의 부분적인 성취가 우리의 힘을 알아채게 했던 몇가지 사건들이었어요.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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