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이 어떡하죠?]홍성도/가출 막으려면 귀 열어라

  • 입력 1999년 9월 26일 18시 58분


《청소년 문제 전문가들이 체험 사례를 바탕으로 쓰는 이 칼럼은 매주 월요일 게재됩니다. 10대 자녀 문제로 고민하는 부모는 청소년보호위원회 가정교육분과위(02―735―6250)로 연락하면 도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예쁘고 영리하게 생긴 한 여고생이 병동에 입원했다. 밖에 못나가도록 부모에게 가위로 머리를 숭덩숭덩 잘린 모습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영리해 부모가 기대를 많이 한 학생이었다. 기대한 만큼 잘했기 때문에 기대는 더욱 더 커졌다.

작년에 반장이었던 이 학생은 강압적인 담임선생님이 꼭 자기 아버지를 닮았다고 굉장히 싫어해 선생님과 마찰이 많았다. 성적은 점차 떨어지기 시작했고 실망한 아버지는 딸을 더 억압했다. 집안 분위기는 항상 큰소리와 긴장감에 싸였다.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부모보다는 학원에 함께 다니던 몇몇 친구들과 더욱 가까이 어울리게 되었다.

“내가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려면 당장 나가.” 화난 아버지의 말을 듣고 이 소녀는 그날로 가출했다.

가출 후 구렁텅이에 빠진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가출 청소년들은 집을 나가기 전부터 구제할 길 없는 문제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가출 청소년의 대부분은 우리 집 아이나 옆집 아이와 같은 보통 아이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의 행동을 고치고 가족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적어도 가출하기 전 몇달 이상 노력한다. 이런 노력의 성과가 보이지 않게 되면 포기하고 그냥 집을 뛰쳐나간다.

이 소녀는 “아버지가 내 의견은 듣지 않고 꽥꽥 소리만 지르고 주먹으로 때렸고 어머니는 꼬치꼬치 간섭했다”고 말했다. 그 소녀의 부모는 잘잘못의 정도를 따지지 않고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잔소리하고 야단쳤다.

“그 애는 만나지 마라. 딴 애들은 다 공부하는데…. 지금이 어느 때냐. 부모는 너를 위해 희생하는데…. 동생도 너를 본떠 점점 나빠진다.”

가정문제 학업문제 부모의 엄격한 규율이나 제재 등 모두가 가출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청소년과 부모사이의 대화 부족이다. 가출 청소년의 반수 이상은 부모와의 대화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한다. 이런 가정에서는 흔히 부모가 자녀의 의견은 들어보지도 않고 엄격한 규율을 설정한다. 이 규율을 어기면 심한 벌을 받는다. 10대들은 이 규율과 제재가 부당하다고 느끼지만 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없다. 때로는 부모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 알려고 노력하지만 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시도는 좌절된다. 결국 이들 중 많은 수가 포기하고 집을 뛰쳐나간다.

자녀가 가출하면 곧 경찰에 알리고 문제의 심각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출을 미리 예방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꾸중하고 설교하는 대신 우선 그들에게 말하도록 하고 그들의 의견에 귀기울여야 한다.

홍성도<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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