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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9월 10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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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냐? 거지냐? 여기에는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거지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왕이 되기를 원한다. 이렇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세계에서는 늘 낙오자, 실패자, 따돌림 당하는 자가 생기게 마련이다.
새로 이사온 종민이는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다. 하루는 1교시 끝나고 화장실에 가 볼 일을 보는데 갑자기 덩치 큰 아이가 들어오며 “왕, 거지, 왕, 거지”라고 외친다. 그러자 아이들이 주르르 따라 외치며 왕이라 정한 자리에 재빨리 모두들 한줄로 선다. 거지자리에 있던 종민이는 그때부터 ‘거지’로 놀림 당한다. 언제나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왕자리에만 줄을 선다.
하루는 종민이가 “짜장, 짬뽕, 탕수육”이라고 소리치며 텅 빈 거지자리로 쏜살같이 뛰어간다.
거지자리가 탕수육자리가 된 것이다. 갑작스런 새로운 기준의 출현에 놀란 아이들이 어떤 것이 더 우월한 지 몰라 당황스러워한다.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덩치 큰 아이가 “왕, 거지”를 다시 소리쳐 외친다. 그러자 재빨리 “짜장은 이천오백원, 짬뽕은 삼천원, 탕수육은 만 이천원”이라고 종민이가 소리친다. 잠시 아이들이 탕수육자리로 모였다가는 나름대로 까닭을 갖고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아이들 눈높이에 알맞는 생활동화다. 무엇보다 이 동화가 돋보이는 이유는 현대교육철학의 의미가 깊게 담겨있기 때문이다.
획일화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각에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감각을 키워주자.
만약 내가 종민이였다면 위기극복을 위해 “짜장 짬뽕 탕수육”대신에 어떻게 했을지 이야기를 나눠보자.
정태선(활동중심언어교육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