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밀레니엄베스트]최고의 발명/지퍼

  • 입력 1999년 8월 26일 20시 14분


옷을 여미기 위해 고안된 장치들 중에서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스타가 된것은 아마 ‘지퍼’밖에 없을 것이다. 뮤지컬 ‘팰 조이’에 등장하는 스트립쇼 장면에서 여배우는 빛나는 의상을 하나씩 벗어 던지며, 지퍼의 놀라운 능력, 특히 그 놀라운 속도를 직접 보여준다.

지퍼는 옷을 입는 문화뿐만 아니라 옷을 벗는 문화에도 혁명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동시에 남녀간의 관계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옷을 입고 벗는 것은 수백 년 동안 아주 느리고 불편한 일이었다. 실패가 많은 일이기도 했다. 옷을 졸라매는 끈이 꼬이거나 끊어지기도 했고, 핀이 살갗을 찌르기도 했고, 단추가 갑자기 떨어지면서 튀어나가기도 했고, 단추 구멍이 찢어지기도 했다.

옷을 입고 벗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 나머지 심지어 생명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전쟁터에서 부상한 중세의 기사들은 양철로 만든 갑옷을 빨리 벗지 못해 출혈과다로 목숨을 잃었다. 또 30개의 단추가 달린 정장 드레스 밑에 끈으로 조른 코르셋을 입은 18세기와 19세기 여자들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서 쉽게 기절하곤 했다.

지퍼가 만들어지는 데는 수십년이 걸렸다. 1893년에 열린 세계 컬럼비안 박람회에 전시된 휘트콤 저드슨의 ‘잠그는 죔쇠’는 너무 크고 꼴사나웠다. 그 이후 일부 여성들을 포함한 많은 발명가들이 지퍼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마침내 1917년 기드온 선드백이 오늘날과 같은 지퍼로 특허를 얻었다. 그의 ‘고리 없는 여밈 장치’는 제1차 세계 대전때 육군과 해군의 구명 조끼와 비행복에 사용되었다. 그리고 1920년대에는 B F 굿리치 회사가 이 장치에 지퍼라는 이름을 붙여 방수용 덧신에 사용했다. 그러나 최신 유행의 의류에 쓰일 수 있을 만큼 가볍고 유연한 지퍼가 만들어진 것은 1930년대의 일이었다.

처음에 지퍼는 모두 금속으로 만들어졌다. 지퍼를 옷에 다는 경우에는 대개 지퍼 위를 천으로 가렸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 지퍼는 유행의 일부가 되어 밝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퍼는 소위 바이커(오토바이를 타는 사람) 룩에서도 중요한 소품으로 등장했다. 오늘날에도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이 즐겨 입는 검은 가죽 재킷에는 빛나는 금속 지퍼가 달려있어서, 속도와 폭력, 그리고 섹스를 암시한다.

어떤 영화 전문가가 “지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줄지어 달린 단추로 여민 드레스는 낭만적인 도전을 의미한다. 그 단추들을 벗기려면 남자는 인내심과 솜씨와 매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퍼, 특히 반쯤 열려 있는 지퍼는 빨리 오라는 말없는 재촉을 의미한다. 지퍼가 암시하는 섹스는 오랫동안 뜸을 들인 끝에이루어지는낭만적인섹스가 아니라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열정적인 섹스다. 상대의 옷을 벗기는 것이 한 순간의 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앨리슨 루리:‘옷의 언어(The Language of Clothes)’와 ‘마지막 수단(The Last Resort)’의 저자.

(http://www.nytimes.com/li

brary/magazine/millennium/m1/lurie.html)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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