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정훈/재계가 목청높인 까닭은…

  • 입력 1999년 7월 15일 19시 12분


“재계는 지금 룰이 없는 경기장에서 정부와 노동계 양쪽을 상대하며 악전고투하고 있다.”

노사정위원회 복귀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재계인사들이 털어놓은 불평이다. ‘대대적 재벌개혁’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정부와 조폐공사 파업유도 발언 파문을 계기로 노사문제의 주도권을 거머쥔 노동계에 일방적으로 휘둘리고 있다며 허탈해하는 모습도 보였다.

사실 재계가 노사정위나 제도개선위에 참여해 꼬여있는 노사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는 누구도 이견(異見)이 없다. 하지만 재계가 선뜻 노사정위에 복귀하지 못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조폐공사 사건 이후 노동계의 자세가 강경해지자 정부가 재계를 따돌리고 노동계와 물밑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의심하기 때문이다.

새정부 출범 당시만 해도 정부는 노동시장을 대대적으로 개혁해 노사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 외자유치에 나서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실업사태와 지지부진한 재벌 구조조정으로 정부가 여론의 비난을 받으면서 노동시장 개혁작업은 물건너간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거세다. 현재 공공부문에서는 인력감축을 통한 구조조정 계획이 엄청난 차질을 빚고 있으며 이 여파가 재계 전반으로 확산될 기미다.

재계는 15일 주요기업 인사노무담당 임원회의를 통해 노사정위 복귀 결정을 유보한 뒤 공정한 게임룰을 보장하라고 목청을 높였다. 추후 회장단회의에서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하기로 했지만 재계의 노사정위 복귀는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다.

노사정위를 정상적인 노사현안 해결의 도구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심판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노동시장 개혁을 통해 건실한 노사관계를 정착시킨다는 정부의 구상이 공상(空想)에 그치면 곤란하다.

박정훈<정보산업부>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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