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보안법 논할 때 아니다

  • 입력 1999년 7월 6일 18시 34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캐나다 방문중 “국가보안법에 독소조항이 있기 때문에 이 법의 대폭 개정 또는 대체입법을 준비중”이라고 언급했다. 새 세기와 새 밀레니엄의 시작을 눈앞에 두고 보안법의 낡은 틀을 벗겨버리고 그에 걸맞게 정비할 필요성이 있다는 데에는 수긍이 간다. 보안법의 개폐(改廢)는 김대통령이 야당시절부터 줄곧 주장해온 공약사항인데다 이 법에 일부 독소조항이 포함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보안법에 관한 논란을 과연 이 시점에서 벌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보다 깊이 생각해보는 게 좋을 듯싶다.

독소조항으로는 ‘반국가단체’와 ‘국가기밀’의 개념, 반국가단체 등 찬양고무죄,불고지죄(不告知罪) 등이 꼽히고 있다. 이들 조항은 사상 표현 양심의 자유에 어긋나 자유민주주의와 양립될 수 없거나 개념이 모호하고 추상적이어서 남용의 위험이 있으며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형법상의 각종 이적죄(利敵罪)와 간첩죄만으로 충분하고 보안법은 필요없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한편에선 이 역시 상호주의에 입각해서 검토해야 하며 북한은 전혀 변하지 않는데 우리만 일방적으로 무장해제하는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된다는 등 반대의 소리도 만만찮다.

지금은 안보상황이 매우 미묘한 시기다. 남북간 연평해전과 금강산관광객 억류 및 관광사업중단, 이산가족상봉을 위한 차관급회담의 결렬 등을 계기로 햇볕정책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옷 로비’의혹 파업유도의혹 등 일련의 사건으로 민심이 크게 이반돼 ‘정권의 위기’를 넘어 ‘국가의 위기’로 보는 견해마저 나오고 있다. 나아가 특검제 논의가 본격적으로 벌어지면 엄청난 논쟁이 예상되는데다 다음달이면 윤곽이 드러날 내각제를 둘러싼 공동여당간, 여야간의 갈등도 하나의 시한폭탄이다.

이처럼 국론분열을 초래할 위험성이 있는 국가적 현안이 산적한 시점에 보안법 논란까지 가세한다면 안보상황도 취약해질 소지가 있다. 보안법논쟁이 본격화하면 이 법의 성격상 이른바 보수―진보진영의 주장이 격렬해져 자칫 사회의 불안요인으로 확산되지 않을지 염려된다. 따라서 정치 사회적으로 보다 안정된 분위기를 회복한 뒤에 본격적 논의에 들어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본다. 혹시라도 정부가 성과주의에 매달려 보안법 개폐작업을 가속화한다면 예기치 못한 어려움에 부닥칠 수도 있을 것이다.

보안법의 남용을 막기 위해서는 이른바 ‘독소조항’의 적용범위를 엄격히 제한하려는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수년전 그런 취지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보안법 개폐문제는 시간을 두고 각계 의견을 충분히 들으면서 합리적 방향을 차분히 모색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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