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소동기/기다렸던 「세리 우승」 보고

  • 입력 1999년 6월 21일 19시 32분


US오픈 골프 중계방송을 시청하랴, 박세리 이야기를 전해 들으랴, 밤을 꼬박 새웠다. 천신만고 끝에 18홀에서 파 세이브를 함으로써 우승을 거머쥔 페인 스튜어트가 포효하는 것을 지켜보며 최선을 다한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당당한 태도에 정말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에 비해 세리의 우승은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오히려 덤덤한 느낌이었다. 거의 아무런 느낌이 없는 것 같아 의아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출근길에 켜 놓은 라디오로부터 뉴스앵커가 화두에서 세리의 우승을 코멘트하는 것을 듣는 순간 갑자기 울컥 목구멍이 막히고 굵은 침을 삼키게 되는 것을 느끼면서 역시 나는 한국인이라는 고백을 했다. 참으로 얼마나 기다렸던 우승인가. 얼마나 절묘한 시점의 우승인가.

세리는 여자US오픈대회가 시작될 무렵 인터뷰에서 “리드베터는 정말로 내가 필요할 때 내 곁에 있어 주질 않았다. 나는 내가 필요로 할 때 내 곁에 있어 주는 티칭프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리의 골프가 예상과 달리 부진했을 때 가장 큰 원인을 티칭프로 리드베터와의 결별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필자의 생각은 달랐다. 물론 리드베터가 뛰어난 레슨프로라고 생각하지만 장사꾼이 과대포장해 놓은 면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도 필자는 그가 골프기술을 가르치고 있을지 모르나 골프철학을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학원강사로서의 인상을 풍길 뿐 스승으로서의 품격이 없다는 느낌을 가졌던 것이다. 극도의 슬럼프에 빠져 있는 닉 팔도가 그를 필요로 하지 않고 있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지난 한해 동안 세리가 세상을 놀라게 한 뒤 세리에 관한 일본 NHK 텔레비전의 특집방송을 시청했던 적이 있다. 그때 그의 골프가 단순히 골프 기술을 전수하는 강사를 필요로 하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 있음을 알게 됐다. 골프를 통해 인생을 통찰하고 삶을 엮어가는 방법을 그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스승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확인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우승을 보채는 국민의 불같은 성화에도 불구하고 크게 동요하지 않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세리를 보면서 더욱 강해졌다.

물론 세리가 지금처럼 계속 혼자서 하는 골프는 무척이나 위험하다고 하는 의견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세리가 전반기 동안 리드베터를 찾지 않은 것은 무척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리드베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우승했다.

이제는 사람들도 세리만의 독특한 골프세계가 있음을 알게 됐으리라. 리드베터가 세리의 우승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리드베터의 티칭프로 사업에 세리가 없어서는 아니될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한 세리가 던지는 한 마디의 말이 리드베터의 그것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값어치를 지녔음을 알게 됐을 것이다.

세리의 골프는 이번 우승으로 값진 교훈을 우리들에게 남겨 주었다. 매사에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자는 것이다.

소동기(변호사·골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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