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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6월 7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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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며 듣는 이를 감동시키던 그를 이젠 그저 씁쓸한 추억으로만 간직해야 할까.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만들겠노라던 그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를 벌써 잊은 것일까.
국민을 하느님처럼 섬기겠다고 거듭거듭 다짐하던 모습은 그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 불과한가.
죄없는 서민들의 고통에 눈시울을 적시던 취임식장의 DJ가 불과 1년 사이에 생판 딴사람이 되었다는 말인가.
97년 12월에 이루어진 것은 정권교체가 아니라 DJ의 ‘대통령 취직’이었던 것인지 모른다.
청와대 비서실은 DJ면담 예정자들을 상대로 혹시 할지도 모를 ‘싫은 소리’를 서면으로 제출받아 미리미리 솎아내는 일에 열심이라고 한다.
의도적 조작의 혐의가 짙은 여론조사로 장난을 치는 아부꾼들에게 곁을 주고, 하필이면 눈꼽만큼의 개혁의지도 없는 법무장관을 감싸느라 ‘여론충돌 실험’을 감행하는 DJ를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돈선거 실상을 폭로한 신문사를 고소하는 적반하장, 특검제와 인사청문회 공약을 저버림으로써 자초한 ‘김태정 파동’, 개혁의 종언을 예고하는 제2기 내각의 면모, 준법각서라는 괴이한 변종을 낳은 인권정책 등 ‘국민의 정부’는 스스로를 과거의 정권과 구별짓는 데 실패했다.
힘은 힘대로 썼지만 재벌개혁에는 별 진전이 없고, 송장이 된 은행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는 동안 대다수 근로계층은 임금삭감과 정리해고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자영업자의 소득 파악에 필수적인 세무행정 인프라를 갖추지도 않은 채 국민연금 확대를 강행함으로써 그 훌륭한 제도를 원망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외환위기 극복의 공적이나 일관성있는 대북정책은 마땅히 높이 평가해야 하나, 한 두가지 잘한 점도 없는 정부가 어디 있겠는가.
작금의 위기는 외환(外患)이 아니라 내우(內憂)이다. 야당은 지리멸렬하고 시민단체는 우호적이며 ‘반개혁 세력’이 조직화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김대중 정권의 위기는 고관집 도둑사건과 돈으로 도배한 재보궐선거, 옷로비 사건 등에서 노출된 집권세력의 ‘정치적 방탕’과 국민연금 및 한일어업협정 파동에서 드러난 정책적 무능에서 빚어진 것이다. 남을 욕할 이유가 없다.
DJP연합의 기반인 호남과 충청 유권자들은 할 말이 없다.
오랜 세월 연대감을 표명했던 모래시계 세대와 386세대는 한가닥 남겨놓았던 DJ에 대한 미련을 끊어야 할 때가 왔음을 예감한다.
국민회의의 전통적 지지층이었던 도시서민과 노동자들은 짙은 배신감을 토로한 지 이미 오래이다. ‘DJ당’은 집권당일 뿐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당이 아니다.
전두환씨와 5공 잔당에 이은 김영삼씨의 정치 복귀는 김대중 정권의 ‘정치적 붕괴’의 원인이 되는 게 아니라 그것을 확인하는 징후에 불과하다.
‘통치권자 김대중’은 이 위기를 타개할 수 없다. 민주주의와 국민을 하늘처럼 섬기는 ‘정치인 DJ’만이 할 수 있다. 그러니 ‘DJ를 찾습니다’ 신문광고라도 내야 하겠지만 이를 어쩌랴, 그마저 반개혁 세력의 선동으로 몰릴까 두려움이 앞서니 말이다.
유시민〈시사평론가〉smrhyu@ms.kr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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