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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6월 2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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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좀 보겠습니다.
손님은 힐끗 눈길만 한번 주고 고개를 까딱했다. 나는 신문을 집어 오면서 그와는 반대편 자리로 돌아 앉았고 탁자 위에 펼치고 읽기 시작했다. 주민등록 번호를 쓴 작은 팻말을 들고 찍은 최동우며 건이며 아는 얼굴들이 보였다. 검거된 인원은 전체의 사분의 일밖에 되지않는 열 한 명 수준이었으나 기사 내용으로 보아 발표된 조사 내용은 매우 근접해 있었다. 기사의 아래쪽에서 처음엔 그냥 지나쳤던 내 사진을 알아보게 되었다. 나는 잠깐 놀라서 숨을 들이마시고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제각기 음식을 먹느라고 내게 시선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사진은 내가 군대에 가기 전에 주민등록에 썼던 옛날 사진이었다. 머리도 길고 볼이 움푹 패었고 훨씬 어려 보이는 인상이었다. 신문에 난 사진으로는 현재의 나를 알아보기가 어려울 거라며 자위했다. 내게도 자장면이 나와서 나는 얼결에 신문을 덮고 면을 비벼서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젓가락으로 연신 면을 말아 넣으면서도 신문의 내용을 머리 속으로 재구성하고 있었다.
도표에 의하면 내가 조직책으로 되어 있었고 주범이었다. 그렇게만 나와 있을 뿐 간단하게 ‘수배 중’이라고 나오고 더 이상의 범법 사실이나 수사 내용에 관해서는 언급이 되어 있지 않았다. 조직부책인 동우는 인천과 부평 일대에서 노동자 조직을 포섭하기 위한 거점을 마련했다고 되어 있었고, 처음 보는 이름들이 나오고 그의 노동자 현장조직이라고 나와 있었다. 그에게서는 북에서 보낸 책자와 자료들이 함께 발견 되었다는데 일본에 유학간 박석준이가 연락책이라고도 했다. 건이는 아지트를 운영하던 행동책이라고 되어 있었으며 경자와 혜순이와 다른 여공들의 이름도 나왔다. 나는 신문을 그 손님에게 돌려주지 않고 탁자 위에 놓아둔 채로 슬그머니 일어나 계산대 앞으로 걸어나갔다. 돈을 내고 뒤를 돌아보니 그는 이쪽으로 등을 돌린 채 신문에는 관심도 없이 먹기만 했다. 나는 이 사실을 당분간 윤희에게는 알리지 않고 가슴에 접어 두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먼저 최에게 안전 여부를 물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인적이 드문 우체국 앞에도 두 칸이나 있는 공중전화를 쓰지않고 내쳐서 차부까지 걸었다. 도시나 다른 읍내로 나가는 시외버스들이 쉼없이 드나드는 차부의 건물 앞에 공중전화 박스가 네 칸이나 있었다. 보통 날이라서인지 사람들은 주말보다는 훨씬 적었고 전화 박스도 비어 있었다. 나는 제일 가녘의 박스로 들어갔다. 다이얼을 돌리자 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음 나야. 신문 봤어.
형이요? 모두 다 끊어졌어라우. 인천 형이 달리는 바람에 모두 감자가 되아부렀소.
나는 신문을 보던 첫 순간에도 그랬듯이 동우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먼저 잡히면 아직 남은 사람에게 다 씌우고 자신은 부담을 덜고 시간을 벌기 마련이었다. 문제는 외곽에 있던 사람들의 이름까지 나와버린 데 있었다. 그것도 뭔가 보호를 해야할 다른 부분이 있었겠지만. 그러나 어쨌든 감자 넝쿨처럼 동우를 잡아 당기니 지하에 묻혔던 열매들이 주렁주렁 따라 나와 버린 것이다.
거기두 오죽 어려웠겠냐?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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