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경달/「청와대 앞에서 사는 죄」

  • 입력 1999년 5월 30일 19시 32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27일 러시아와 몽골을 방문하기 위해 출국한 뒤 청와대 앞 동네가 시끄러워졌다.

서울시가 청와대 ‘코 앞’인 종로구 효자로 7백m 구간에서 상수도관 교체공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공사는 청와대와 효자동 창성동 일대 3백여가구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낡은 상수관을 교체하기 위한 것으로 공사구간이 청와대 바로 앞이다.

공사는 낮에는 물론 철야작업으로 5일째 계속되고 있다. 이로 인한 소음 때문에 주민들은 며칠째 잠을 설치고 있다. 28일 새벽엔 주민들의 항의로 한 때 공사가 중단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서울시는 당초 열흘로 잡았던 이 공사를 다음달 1일 대통령이 귀국하기 전까지 마치기 위해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하고 있다.

대통령이 청와대를 비웠을 때 청와대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공사를 시행하는 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주민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행정편의 위주의 발상이다. 서울시는 사전에 주민들로부터 양해를 구했어야 했다. 또 최대한 주민들의 생활에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내에서 공사를 진행해야 했으나 그런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

서울시는 25일 밤부터 26일 오전까지 공사 준비작업을 하면서 예고도 없이 수돗물공급을 중단했다. 28일에는 세수도 못하고 출근했다는 주민들의 불평이 언론사에 쏟아졌다. 한 주민은 30일 “청와대 앞에 사는 게 무슨 죄냐”고 성토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시의 한 관계자는 “주민 설득하랴, 공사 진행하랴 입장이 말이 아니다”며 “‘특정지역’ 공사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이번 소동은 각급 행정기관이 말로는 대민서비스를 강조하면서도 아직까지 ‘서비스마인드’를 갖지 못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김경달<지방자치부>d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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