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性역할 바뀐 남녀의 「사랑 후유증」

  • 입력 1999년 5월 30일 18시 09분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말한 것처럼, 확실히 사랑이란 ‘교전(交戰)의 일종’이다.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판이한 환경에 속한 사람들이고 성역할까지 전도됐을 경우 교전의 정도는 더 심해지기 마련.

프랑스 영화 ‘육체의 학교’는 그다지 흔치 않은 ‘부유한 중년 여성―가난한 젊은 남자’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모든 일들을 그린 영화다. 제목과 소재에서 에로틱한 장면들을 연상하기 쉽지만 그런 건 거의 없다.

브누와 자코 감독은 과감한 표현으로 훨씬 더 탐미적인 영화를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역할이 뒤바뀐 남녀의 밀고당김, 집착과 질투, 사랑의 상처와 치러야할 대가를 화면에 글을 쓰듯 섬세하게 묘사했다.

부유한 중년의 독신여성 도미니크(이사벨 위페르 분). 카리스마가 있고 원숙하며 마음속에 무언가 상처를 지닌 듯한 남성의 이미지가 강하다. 반면 켄틴(뱅상 마르티네즈)은 언제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어쩌면 여성적인 이미지의 남창(男娼).

이들은 영화 초반부터 식당과 전자오락실에서 파워 게임을 벌인다. 성적 접촉 이전에 누구의 스타일이 이기느냐의 싸움에서 승자는 도미니크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에게 빠져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켄틴.

도미니크는 켄틴에게 광적으로 집착하며 그의 주변환경을 뒷조사하다 켄틴이 양성(兩性)남창임을 알게 되고 혼란에 빠진다. 켄틴 역시 나이와 계급이 자신보다 훨씬 위인 도미니크와의 관계에서 불안을 견디지 못한다.

비정상적인 애정의 직접적 묘사보다 사랑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과정의 심리적인 면에 주목하는 이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건 도미니크 역을 맡은 이사벨 위페르의 탁월한 연기다. 도미니크가 켄틴과 헤어질때 ‘포커 페이스’로 펑펑 우는 이사벨 위페르의 연기는 압권.

2차 세계대전후 일본 전쟁 미망인들의 육체적 탐욕을 충격적으로 묘사한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동명 소설이 원작. 다음달 5일 개봉.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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