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119)

  • 입력 1999년 5월 18일 19시 25분


우선 최 전도사에게 찾아가서 그 동안의 광주의 뒷소식을 알아보기로 했다. 나는 철도를 따라서 양림동 근방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부근은 전에 내가 방을 얻어 자취를 했던 적이 있어서 작은 골목까지도 눈에 익은 곳이었다. 오래된 동네라 지붕이 나직하고 서울에서 본다면 달동네로 보일만큼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동네였다. 나는 최 전도사네 이층 살림집이 보이는 데서 구멍가게라든가 무슨 공중전화 박스라든가 사람들이 규칙적으로 이곳을 관찰할 지점이 없는가 살피고나서 집 바깥에서 오르는 철제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위에 오르니 두어 평 되는 베란다가 나오고 창 너머로 집안이 다 들여다 보였다. 맞은편 싱크 대 앞에서는 그의 신혼 아내가 뭔가 음식을 만들고 있었고 최는 방 바닥에 엎드린채로 책을 보고 있다. 내가 바로 그의 등 뒤 유리창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자 그가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놀라서 입을 쩍 벌리는 게 보였다. 그가 일어나 얼른 창문을 열었다.

아니 이게 누구여? 현우 형, 무사했구만요.

그래 별 일 없냐?

내가 마루에 들어서자 최의 아내가 얼른 커튼부터 쳤다. 그와 마주 앉자마자 최는 대번에 눈시울이 벌겋게 되더니 소매를 들어 얼른 닦았다.

서울서 내려오시는 길이오?

응 그래, 남은 사람들은 다들 잘있지?

남은 사람들이 어딨소. 모두 죽고 때들어가불고 직장 떨려나고 사는 게 아니어라우. 서로 만나면 인자 미안해서 인사도 못하지라. 슬슬 피하지요.

뭐가 미안해….

살아 남은 거이 추접지라. 서울 간 광주 아그들 다들 잘 있습디여?

잘 있을 거야.

들으니께 시방 간첩 사건들을 무더기로 엮어내는 모양입디다.

뻔하겠지. 남미에서도 항쟁을 빨갱이 폭도로 몰았으니까.

우리보러 글로 가라고 몰아내는 폭이지라. 나도 명색이 예수쟁인디.

미국 반대하면 빨갱이라구.

마침 점심 상을 보던 중이었던지 그의 아내가 잘 차린 밥상을 겸상으로 들여왔다. 갓 나온 상추와 쑥갓의 초록이 싱싱하다.

형님 기운 낼라먼 고기를 자셔야 쓸것인디 풀 밖엔 없어라우.

고기는 서울서 매일 먹는다.

시외의 북쪽 야산에서 구덩이를 파고 암장했던 시체가 몇 구 발견 되었다는둥, 시 청소부가 청소차에 실어온 시체들을 공원부지의 연못에 쓸어 넣는 걸 목격했다는둥, 무등산 산록의 취수원이 되는 저수지에 시체를 던져서 독한 소독약을 풀었다느니, 그래서 시민들이 여름내 수돗물을 못먹었다는 얘기를 최와 그의 아내가 격앙된 어조로 말한다. 그들은 아직도 상황이 끝나지 않았다. 거리에 나서면 서로 공범자처럼 간직한 이야기들을 가슴에 품고 눈길이 마주치면 서로 피해 가면서.

너 한 이틀 시간 있냐?

내가 묻자 그는 내 물음이 그냥 소리가 아님을 대번에 알고 긴장하면서 말했다.

오늘이 목요일이고 토요일까지는 개안아라우.

그럼 됐다. 너 나하구 오늘 밤 차루 서울 올라가자.

서울서 오시는 길이람서?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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