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제2의 大盜」미스터리

  • 입력 1999년 4월 16일 18시 38분


현정권의 ‘실세’를 포함한 고위공직자들의 거액도난사건을 경찰 검찰이 회유와 협박 고문으로 축소 은폐했다는 한 절도범의 ‘양심선언’으로 큰 파문이 일고 있다. 이 절도범은 피해당사자들이 세인의 눈이 두려워 사건을 아예 신고조차 하지않거나 축소신고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의 주장이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앞으로의 수사에서 밝혀야할 일이나 진술내용중에는 IMF체제를 견디느라 힘겨운 국민의 감정을 자극하는 대목들이 있다.

“유종근(柳鍾根)전북지사 집에서는 장롱서랍을 열 때마다 1백만원짜리가 툭툭 떨어졌다. 화장대와 부엌서랍도 그랬다. 서재의 007가방에서는 1만달러 묶음 12개가 나왔다. 김성훈(金成勳)농림부장관 집에서는 운보 김기창 화백의 수묵산수화와 탱화 등 수억원짜리 그림들을 훔쳤다. 배경환(裵京煥)안양경찰서장 관사에서는 김치냉장고를 열자 거의 1백만원씩이 든 현금봉투 58개가 있었다. 봉투에 쓰여진 이름과 직위로 보아 선거용 같았다” 상황설명이 너무나 구체적이다. 의혹을 해소하지 않고는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사건이다.

그러나 ‘대도(大盜) 조세형’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이번 사건에서 우선 경계해야할 대목이 있다. ‘대도’ 행세를 하는 절도범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정심, 많이 가진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증오심 등은 바람직하지 않다. 절도범의 폭로내용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가 노리는 것은 바로 이런 점들일 가능성이 높다. 피해당사자들은 ‘사실과 다르다’며 극구부인하고 있어 아직은 어느쪽 말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고위공직자들의 거취가 이유없이 한 절도범의 입에 놀아나서는 안된다. 그런 점에서도 축소은폐 여부와 많은 재물의 출처 및 보관과정에 대한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

사건의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채 넘어간다면 김대중(金大中)정부로서는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벌써부터 집권세력의 부도덕성과 이중성을 입증한 사건으로 규정, 공세를 강화하면서 정치쟁점화 하고있다. 우리는 이 사건이 또 하나의 소모적 정쟁(政爭)거리로 비화돼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러자면 검찰이 객관적 사실을 철저히 조사해 의혹을 씻는 길밖에 없다.

절도범의 주장대로 만약 피해당사자들의 비리혐의를 감춰주기 위해 사건을 축소은폐한 사실이 드러난다면 그 자체가 국가기관에 의한 엄청난 범죄행위다. 관련자들에 대한 엄중한 문책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덧붙이건대, 이번 사건의 피해 공직자들이 부지사 공보관 등 공(公)조직을 통해 개인사정을 해명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