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어느 대학원생의 호소

  • 입력 1999년 4월 2일 19시 29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는 11세기 설립된 이탈리아의 살레르노대학과 볼로냐대학이 꼽힌다. 당시 유럽에는 두 대학 말고도 파리대 옥스퍼드대 같은 명문대학들이 교황이나 제왕들의 후원을 받으며 창설됐다. 이 대학들은 초창기에는 사적인 연구단체에 불과했다. 강의는 교과서 내용을 설명하는 것뿐이었으며 교수의 학설을 비판하는 것은 엄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단과대학을 뜻하는 칼리지(College)라는 단어는 기숙사란 의미의 콜레기움(Collegium)에서 나온 것이다. 대학 규모가 커지면서 대학마다 기숙사시설을 갖추게 됐기 때문이다. 기숙사는 주로 독지가들이 희사한 돈으로 세워졌다. 돈에 쪼들리기는 당시 대학들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근대적 형태의 대학으로는 1694년 문을 연 독일 할레대가 처음이다. 대학원 체제를 갖추면서 ‘대학의 자유’를 선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현대에 들어와 학문 연구와 지식 전수의 무게중심은 대학에서 대학원으로 옮겨가고 있다. 지식의 양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대학 공부만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탓이다. 곧 도입될 연구중심 대학이란 것도 한마디로 대학원중심의 대학체제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대학들이 제대로 준비를 갖추고 있느냐다. 지금도 우리 대학원은 교수확보나 시설면에서 내세울게 별로 없다.

▽서울대 물리학과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원내에 시설 장비 등 기본적인 연구여건조차 마련되지 않은데 대해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고 한다. 한 학생은 생계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무료로 구내식당 식권을 지급해 달라고 학교측에 건의하기도 했다. 경제 악화에 따른 원인도 있지만 학교측이나 교육당국이 기회 있을 때마다 대학원 내실화를 외치면서도 번번이 구호에 그치고 마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아 착잡하다.

〈홍찬식 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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