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배인준/「진공기관」오부치

  • 입력 1999년 3월 17일 18시 36분


요즘 국내 정치인 가운데 대중이 즐겨 부르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국민적 존경심이 배어 있는 애칭을 얻은 정치인은 전무(全無)한 것 같다. 고작해야 언론에서 많이 쓰는 DJ JP 그리고 YS 등의 영문 이니셜정도다.

▽19일 방한하는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62)일본총리는 작년 7월 총리가 되기 전까지 둔우(鈍牛·둔한 소)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총리직에 도전하면서 그 스스로도 ‘둔우, 뿔을 가다듬는다’는 제목의 정권구상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뉴욕타임스지는 ‘식은 피자’라고 그를 혹평하면서 총리자격 미달자로 간주했다. 뛰어난 구석도, 뚜렷한 정견도, 생기도 없는 비개혁 성향의 파벌의존적 보수정치인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에겐 ‘경제 문외한’이라는 부끄러운 수식어도 따라다녔다.

▽하지만 출범 당시 20%대이던 오부치총리에 대한 일본국민의 지지율이 지금은 40%대로 올라갔으며 총리직 장수(長壽)가능성이 거론된다. 자타가 인정하는 경제정책통이었던 전임총리 하시모토(橋本)보다 훨씬 과감하고 신속하게 경기(景氣)대책과 금융안정책을 추진해 경제불안을 해소시키고 있는 것이 주된 배경이다. 취임 전의 일반적 예상과는 달리 그는 정책운영에 스피드와 결단력을 보여주었다.

▽인품과 포용력도 지지율 상승에 한몫을 한다는 평이다. ‘사람좋은 오부치’ ‘인품의 오부치’라는 말도 동시에 들었던 그의 인간적 매력이 힘을 발하는 셈이다. 나카소네(中曾根)전총리가 최근에 그에게 붙인 ‘진공기관’이란 별명에 성공의 비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이든 백지상태에서 흡수 흡인하는 능력을 강조한 말이 곧 ‘진공기관’이다. 독선과 오만의 정치인들에겐 참고가 됨직하다.

배인준 <논설위원〉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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