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명재/탁상 따로…현장 따로

  • 입력 1999년 3월 10일 19시 24분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정부관리들이 흔히 빠지는 오류가 있다. ‘정부에서 지시하면 그 효과가 바로 나타날 것’이라는 착각이다.

그러나 실상은 어디 그런가. ‘탁상 따로―현장 따로’인 게 현실이다.

10일 오전 무역회관에서 열린 박태영(朴泰榮)산업자원부장관과 무역업계의 간담회에서 벌어진 해프닝은 좋은 예다.

수출업계의 애로사항에 대한 장관의 답변을 듣자고 마련한 이 자리에서 해프닝의 발단은 한 중소기업 대표의 호소에서 비롯됐다.

모터펌프를 수출한다는 Y사장은 “중국 중남미 등 금융이 불안한 나라에서 발행한 신용장에 대해 수출보험공사가 보증서를 발급해도 은행이 이를 받아주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평소 은행창구에서 수없이 느꼈을 답답증을 어렵사리 꺼냈을 것이다.

그러나 박장관의 반응은 의외로 퉁명스러웠다.

“지금도 그런 은행이 있느냐. 은행 이름을 밝히라”며 “그런 은행은 신문에라도 공개해야겠다”고 말했다.

당황한 건 Y사장.

“주거래은행 이름을 밝히긴 곤란하다”고 하자 박장관은 나무라듯 말했다. “그런 은행직원들은 업체에서 스스로 혼을 내줘야지, 정부에 그런 것까지 해달라고 하면 되나.”

질문자는 머쓱해지고 간담회 분위기도 일순 서먹해졌다.

민관(民官)이 머리를 맞대고 수출확대를 위한 의견을 모으자는 자리에서 오히려 양쪽의 시각차만 드러낸 셈이다.

산자부 관계자는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평소 은행에 수출업체 지원을 독려해온 박장관이 아직도 그런 은행이 있다고 하자 순간적으로 화를 낸 것 같다”고 장관을 감쌌지만 ‘정책과 현장’간의 거리감은 아직도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명재<정보산업부>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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