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오래된 정원(60)

  • 입력 1999년 3월 10일 19시 24분


좀… 수상한데.

그렇지, 무슨 신라시대 절두 아니구 새 절인데 말야.

내가 알기론 삼국시대 이래 호국불교란 용어는 있어두 절 이름을 그렇게 짓지는 않아요.

그러려니 하면서두 그냥 이삿짐을 들여 놓았어. 대웅전을 중심으로 집채가 마당 좌우로 벌여 있었는데 오른편에 살림하는 요사채가 있고 왼편에 손님들이 기거하는 방들이 있었지. 호국사는 원래 조그만 대처승 절이었대. 전쟁 뒤에 세워졌다니까 육십년대에나 지었을 거야. 그래서 남편인 주승이 죽자 보살댁이 밖에서 스님 한 분을 모셔다가 절집의 명맥을 이어가구 있었던 거야. 어쨌든 그날부터 거기서 숙식을 하게 되었는데 참 이상하지. 내가 그날 밤 사고를 당했거든.

어머, 무슨 일인데요?

발목이 부러졌어요. 한 새벽 두어 시쯤 되었을까. 소변이 마려워서 잠을 깼지. 덜 깬 눈을 부비며 일어나 툇마루로 나오니 사방이 깜깜해. 신발을 신으려고 발을 내밀고 어둠 속을 더듬어 댓돌을 짚었는데 그냥 허공중인 느낌이야. 헛딛고는 땅 바닥에 나뒹굴었어. 그 순간에 뭔가 무거운 것이 두 어깨를 힘껏 내리 누르는 듯했어. 나는 절뚝이며 일어나 얼결에 볼 일을 보고 다시 들어가서 잠 들었지.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발목이 퉁퉁 부어 오르고 아파서 못견디겠더라. 그래 택시를 불러 타고 도시의 접골원에 가서 진찰을 해보니까 발목쟁이가 딱 부러진 거야. 하룻밤 사이에 깁스를 하고 절뚝발이가 되어서 절로 돌아왔지. 헌데 얘기는 그 다음부터야. 호국사의 주인 아주머니가 모셔왔다는 스님의 법명이 만각인데 그야말로 늦깎이라는 소리지. 내가 날마다 삼시 세 때를 만각 스님과 겸상해서 밥을 먹었는데 이 사람이 도대체 아무 말이 없어요. 두 손 모아 합장하고는 공양 많이 하시오, 하는 게 전부야. 그러기를 한 달쯤이나 지났는데 하루는 만각이 내게 넌지시 그런단 말야. 그만하기가 천만다행이오. 역시 대가 센 젊은이로군.

그 절집에 무슨 사연 있군요?

좀 들어봐요. 내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그거 무슨 말씀입니까, 하구 물어두 그냥 빙긋이 알 듯 모를 듯한 웃음만 짓고는 다시 묵묵부답이야. 내가 이튿날에도 그 이튿날에도 자꾸 물어 보니까 손으로 언덕 아래를 가리키며 이러잖아. 조오 아래 뭐가 있는지 가보시구료. 위쪽 마당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작은 각이 한 채 내려다 보였는데 나야 그저 무슨 산신각이나 명부전 같은 게 있는줄 알았지. 궁금해서 당장에 내려가 보니 현판이 붙었는데 충혼각이라구 되어 있었어. 나는 문 틈으로 안을 들여다 보았어. 글쎄, 안에는 제단이 보이고 제사지낼 때 쓰던 것처럼 사람의 이름을 쓴 위패가 가득차 있더라니까. 호국사에 충혼각이라니 앞뒤가 맞는 제목 아닌가. 내가 그 뒤에도 스님에게 자꾸 물으니 스님이 그러는 거야. 이 절 터가 육이오 때 격전지였소, 여기서 사람 많이 죽어나갔소, ㄷ 군의 현충일 행사를 해마다 우리 절에서 합니다, 그러더군. 나중에 들으니 빨치산과 전투경찰이 이 고지를 두고 여러번 뺏고 빼앗기면서 전투를 했대. 제각의 위패가 모두 전몰 전투경찰의 것이라더군. 헌데 스님이 좀 묘한 분이었어. 전쟁 때에 상사로 제대했는데 주로 지리산 백양산 불갑산 인근에서 공비토벌을 했대요. 제대하고 결혼을 했는데 세 번이나 내리 상처를 하고는 자식 둘을 속세에 남겨 두고 머리를 깎았다지.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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