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 김용정/위기에서 교훈을 얻었는가?

입력 1999-01-05 18:53수정 2009-09-2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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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1년이 지났다. 지난 1년간 우리 경제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고통과 시련을 겪었다.

국가부도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는 넘겼지만 작년 한해동안 무려 2만여개의 기업이 쓰러졌고 1백60만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렸다. 1인당 국민소득(GNP)은 10년전으로 후퇴했으며 경제성장률은 18년만에 마이너스 6%라는 뒷걸음 성장을 기록했다.

▼ 깨달음을 실천으로 ▼

경제적 고통 못지 않게 국민의 자존심과 긍지도 엄청난 상처를 입었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던 지난 30여년간 한국의 압축성장은 한낱 거품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좌절하지 않았다. 지금의 위기를 재도약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지난 한해동안 우리가 보여준 경제위기 극복노력은 IMF구제금융을 받은 나라 중 가장 모범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같은 노력은 크게 3단계로 진행됐다. 제1단계는 외환유동성 확보를 통한 국가부도 위험 해소에 주력하면서 구조개혁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던 시기였다. 대기업 구조개혁 5대 과제에 합의했고 각 경제주체의 고통분담과 협력을 전제로 한 노사정(勞使政) 대타협도 이끌어냈다. 제2단계는 1단계 정책대응을 통해 이룩한 외환시장 안정을 바탕으로 초고금리 초긴축 기조를 완화하면서 부실금융기관과 기업들을 퇴출시킨 구조조정의 본격화 시기였다.

제3단계는 기업구조조정을 기업개선작업(workout) 중심으로 전환하고 재정적자를 확대해 구조조정을 뒷받침하면서 통화의 신축적 공급과 금리인하로 신용경색 해소에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은 수십조원에 이르는 구조조정 비용을 떠안았다.

우리 경제는 이제 서서히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다. 환율과 금리가 제자리로 돌아오고 각종 경제지표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극도로 침체되었던 실물경제도 되살아나는 움직임인데다 외국자본의 대한(對韓)투자도 급격히 늘고 있다. 사상 최대인 3백99억달러에 이르는 무역수지 흑자에 힘입어 IMF 차입금을 제때 갚아나갈 수 있게 됨에 따라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이 한국의 신용등급을 조만간 상향조정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대내외적으로 한국경제 낙관론이 폭넓게 확산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위기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는가. 우리를 죽음과도 같은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환란(換亂)은 단순한 외환유동성 위기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한국경제의 고질적 병폐인 ‘고비용 저효율’구조를 걷어내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시스템 개혁을 제때 해내지 못한 데 대한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가혹한 징벌임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같은 깨달음이 아니라 실천이다.

지난 1년은 이미 낡을대로 낡아 작동하지 않은 경제구조의 기본틀과 시스템을 뜯어 고치는 한해였다. 올해는 그 틀 속에 변화된 내실을 다져 넣는 한해가 되어야 한다. 기업 재무구조 개선, 사업구조조정, 부실계열사 정리, 기업회계의 투명성 등이 확보되지 않고는 개혁의 성과는 가시화될 수 없다.

금융개혁 역시 앞으로는 경영능력 개선과 체계적인 여신시스템 확립에 역점이 두어져야 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21세기에 대비하는 국가목표와 전략에서부터 정부와 공공부문, 기업 형태와 목표, 사회 시스템, 개개인의 의식과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꿔나가야 한다.

▼ 구조개혁 계속돼야 ▼

IMF 관리체제는 우리에게 시련과 함께 새로운 국가상을 정립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한국의 IMF행이 ‘불행으로 위장된 축복’이 될 것이라는 미셸 캉드쉬총재의 위로와 격려를 현실로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환란 당시의 초심에서 일탈해서는 안된다. 성장잠재력을 키우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경기진작이 필요하긴 하지만 경제정책의 무게중심은 여전히 구조조정 쪽에 둬야 한다. 항간의 소문대로 올 봄의 사회불안설과 내후년의 총선을 의식해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을 통해 거품경제를 되살린다면 지금까지의 개혁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김용정〈논설위원〉yjeong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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