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박성태 「숨겨진 역사」展, 현대문명 폭로

  • 입력 1998년 12월 11일 19시 04분


현대 문명은 이성적인가. 작가 박성태씨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일민미술관(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 광화문사옥)에서 24일까지 열리는 그의 전시 ‘숨겨진 역사―익명의 얼굴들’전은 현대 문명의 야수성을 섬칫하리만큼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80년 광주부터 50년 한국전쟁.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총칼 아래 무참하게 사라져갔는가.

작가는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시내 한복판에서 현장을 목도했다. 그는 “역사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 그에 대한 매듭을 지어야 하는 게 예술의 역할이자 사명”이라고 잘라 말한다.

1,2층 전관을 모두 사용하는 전시는 너무나 처참하고 충격적이다. 메인관인 2층의 ‘일식’. 2천1백75개의 데드마스크가 벽면에 진열되어 있다. 표정과 색이 모두 다르게 일그러진 얼굴들. 바닥에는 한국전쟁 당시 경기도 일산 인근의 한 마을에서 벌어졌던 학살의 현장을 고발한다. 작품에 쓰인 흙의 일부도 그곳의 것.

1층 한군데에서는 버려진 아이들인 입양아를 다루었다. 큰 도자기 접시위에 입양아의 얼굴을 그리고 기록을 옮겨놓았다. 작가에게 입양아는 우리 시대가 껴안아야 할 숙제다. 그는 틈틈히 홀트일산복지타운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작가는 흙과 불, 물로 작업한다. 인체나 얼굴의 형상을 흙으로 성형한 다음 마르기 전에 던지거나 부수어 표정을 만들어낸다. 직접 선을 긋거나 칼질을 하는 것도 있다. 음산한 색은 검게 그을리거나 가마의 온도를 변화시켜 낸다.

서울대 미대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에게 이런 작업은 일종의 이단일지도 모른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도 예사롭지 않다. 흙으로 만든 실물 크기의 인간을 던지려면 장정 여섯명이 들어야 한다. 게다가 팔릴 작품도 아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데 든 4천여만원을 마련하기 위해 결혼 예물까지 팔았다. 작가는 그래도 “이 작업이 내게 가장 맞기 때문에 계속한다”며 허허로운 표정이다.

전시 관람료(학생 1천원, 일반 2천원, 20인 이상 단체 50% 할인)의 일부는 홀트일산복지타운의 기금으로 기탁한다. 02―721―7772

〈허 엽기자〉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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