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어느 초등생의 자살

동아일보 입력 1998-11-27 19:10수정 2009-09-24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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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누명을 쓴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이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자살의 길을 택하고 도의적 책임을 통감한 담임교사가 역시 자살을 기도해 중태에 빠졌다. 어느 슬픈 드라마에 나오는 비극적 결말이 아니라 실제 우리 앞에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이다. 경찰수사가 진행중인 단계여서 사건의 정확한 전말을 말하기는 이르지만 휴대전화를 분실한 한 교사가 엉뚱한 학생을 범인으로 지목한 데서 비롯된 어처구니없는 결과로 드러나고 있다.

세상이 날로 메말라간다지만 ‘사람’을 키워내는 학교는 사회와 뭔가 달라야 한다. 학교 내에 사랑과 믿음의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 스승과 제자, 급우와 급우들이 서로 아끼고 신뢰하지 않으면 학교라고 부를 수 없다. 유서에서도 나타났듯이 자살한 학생은 지난 9월부터 도둑으로 몰린 뒤 심한 정신적 압박에 시달렸던 듯하다. 감수성 예민한 어린 학생이 담임교사는 물론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장기간 의심의 눈총을 참아내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었을 것이다. 이 학생에게 학교는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고통’의 장소였음이 분명하다.

이번 사건은 학교 내에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비교육적인 일들이 흔하게 일어나는지 우려를 갖게 한다. 교내에서 물건이 분실됐을 때 학교측이 은근히 특정 학생을 지목해 범인인 것처럼 몰아가고 이를 교육적 차원이라고 강변하는 사례는 학창시절 누구나 한번쯤 경험한 적이 있을 만큼 흔한 일이다. 게다가 최근 들어 학교폭력이 늘어나고 ‘왕따’로 불리는 교내 집단 따돌림이 확산되면서 교육현장의 비교육적 행태가 심각한 중증으로 치닫는 느낌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교사들 사이에 이번과 같은 불합리한 처리방식이 별다른 거부반응 없이 용인된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해당 학교에는 이런 방식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 교사들도 꽤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를 제지하거나 교육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공개적으로 제기되지 못했다. 이것이 교사들 사이의 경직된 분위기나 무사안일 풍조를 반영한다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이번 사건은 아울러 생명존중을 일깨우는 교육을 강화하는 일이 시급함을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주어진 여건이 힘들다고 해서 고귀한 생명을 쉽게 포기하는 것은 극단주의적 세태의 일단이 아닐 수 없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이후 이같은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더욱 확산되는 추세다. 요즘 학교마다 내세우는 구호가 인성교육이다. 이번 사건처럼 사소하게 여겨지는 데부터 눈길을 돌려야 인성교육, 나아가 교육개혁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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