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소비자보호와 기업책임

동아일보 입력 1998-11-09 19:10수정 2009-09-2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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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제조물책임법이 도입된다. 정부가 내년도 실시를 목표로 제정을 추진중인 이 법은 공산품이나 가공식품의 결함에서 오는 소비자의 피해를 생산 후 10년까지 보장한다는 획기적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는 제조자의 잘못을 소비자가 입증해야 하지만 앞으로는 그런 의무없이 피해배상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보호의 새 장을 여는 혁신적 조치로 여겨진다.

제조물책임법의 제정 취지가 제조자에게 안전하고 결함없는 제품을 만들도록 촉구하자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이 법안은 업계의 부담이 증가한다는 이유로 정부 일각과 제조업체들의 반대에 부닥쳐 그동안 입법이 미뤄져 왔다. 이번에 정부가 오랜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이 법제정에 나서기로 한 것은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제도적으로 한단계 높은 차원의 보호를 받게 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우리보다 경제수준이 낮은 중국이나 필리핀같은 나라도 이미 이 법을 시행하고 있는 점에 비춰볼 때 그동안 정부가 기업을 과보호한 느낌마저 준다.

이 법이 시행되면 득을 보는 쪽은 소비자뿐이 아니다. 당장은 괴롭겠지만 기업도 꾸준한 연구 노력을 통해 보다 안전성이 향상된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게 된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 특히 선진국 시장을 대상으로 한 수출기업의 경우 이 법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국제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구조조정으로 기업체질의 변화가 불가피한 만큼 차제에 국제적 규격과 기준을 받아들여 명실상부하게 새 출발을 한다면 기업이 더욱 성숙할 수 있는 계기도 될 것이다.

물론 법 시행과 함께 업계의 부담도 커질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기업의 흥망을 좌우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막대한 피해배상이 걱정이라면 선진국 업체들처럼 보험제도를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법정에 불려다니느라 일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바로 그런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기업은 제품의 질에 신경을 써야 한다.

정부는 이 법의 부작용도 심각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 34년전 이 제도가 도입된 후 소비자들의 권익향상이 혁신적으로 이뤄졌지만 최근에는 법의 남용이 문제돼 새로운 법적 사회적 규제가 나타나고 있다. 만에 하나 소비자들의 법악용으로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막는 일이 생긴다면 장기적으로 소비자 자신에게도 손해가 된다. 소비자보호가 우선이지만 그렇다고 분위기에 휩쓸려 공정성을 상실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도 피해야 한다. 소비자와 제조업자 모두 권리와 책임에 대한 의식이 바뀌어야 이 제도가 뿌리를 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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