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유러貨 대비 급하다

  • 입력 1998년 11월 4일 19시 00분


유럽단일통화 유러(EURO)의 출범이 5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유보적 입장을 취하던 영국이 3일 합류를 선언함으로써 내년 1월1일을 기해 유럽 주요 12개국이 동시에 화폐를 개혁해 통화를 하나로 묶는 역사적 상황을 연출한다. 3억의 소비자가 존재하는 거대시장 유럽대륙의 통화가 일시에 바뀜으로써 세계경제에도 엄청난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그러나 경제위기에 빠진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하루하루 현안들을 해결하기도 벅찬 나머지 유러대책을 세울 여력조차 갖지 못한 상태다.

유러의 등장은 세계의 기축통화가 지금까지의 달러 일극체제에서 양축체제로 변화됨을 뜻한다. 전문가들은 유러가 앞으로 미국 달러에 버금갈 정도로 사용이 늘면서 수년 안에 전세계 무역결제수단의 4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 여파로 세계 3대 경제축 가운데 하나인 유럽시장의 비중이 급속히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는 특히 중요한 시장변화 가운데 하나다. 서둘러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내년부터 통용되는 유러는 우선 전자거래부문부터 적용된다. 실제 화폐가 등장하는 것은 그로부터 3년 뒤의 일이다. 그렇다고 3년 이상의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전자거래를 위해서도 당장 컴퓨터가 유러화를 인식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와 금융시스템을 바꿔주는 작업이 요구된다. 그런데도 정부의 무관심 속에 대기업들조차 준비에 소극적이다. 세계사적 변화에 우리가 너무 둔감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하루 속히 대책수립에 나서야 한다.

유러의 등장은 유럽 각국을 대상으로 한 상거래 관행에도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유럽지역의 교역대상기업과 현지 유통시스템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유리한 면이 더 많다는 것이 일반적 분석이다. 유럽의 경제가 견실해지면서 소비가 증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그 이유중 하나다. 단일화폐 단일경제권이 형성되면서 이 지역을 대상으로 교역을 하는 국내기업들은 사업하기가 한결 수월해질 수 있다. 물론 이런 이점들은 우리가 준비를 철저히 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이다.

유러통용이라는 새로운 변수는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정부 안에 전담팀을 가동하는 등 범국가적 차원의 대책이 요구된다. 각종 경제단체와 대기업들도 준비태세를 갖춰야 한다. 자체 대비능력이 없는 중소기업들을 계도하고 지원하는 일도 잊어서는 안된다. 시일이 촉박하다는 것이 부담되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한다. 변화를 기회로 삼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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