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구칼럼]나라야 어찌 되든…

입력 1998-10-09 19:20수정 2009-09-24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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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의 오랜 고질 가운데 하나가 편싸움이다. 이 땅에 민주주의와 정당정치가 도입된지도 반세기가 지났건만 위정자(爲政者)들은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패거리정치로 영일(寧日)이 없다. 이른바 ‘판문점 총격요청’사건을 둘러싸고도 또 한번 그 고질이 도졌다.

나라를 멍들게 한 골육상쟁의 당파싸움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이쪽과 저쪽으로 편이 갈려 독한 소리만 골라가며 어지럽게 치고 받느라 포연이 자욱하다. 자기편은 무조건 옳고 상대방은 무조건 타도대상이다. 나라야 어찌 되건 내 알 바 아니라는 식이다. 그렇게들 해서 무얼 어쩌겠다는 것인가. 이 어려운 시기에 정치가 무엇을 지향하며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런 목표도 철학도 없어 보인다. 말릴 사람도 없지만 말린다고 들을 것 같지도 않다.

▼ 본질 벗어난 정치공방 ▼

이번 사태의 본질은 정쟁(政爭)에 있지 않다. 정치사건이 아니라 국기(國基)사건이다. 적에게 총을 쏘도록 요청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보다 더한 반역행위는 없다. 북쪽의 거절로 미수에 그쳤기에 망정이지 실행에 옮겨졌다면 국민은 얼마나 불안에 떨었겠는가. 온 국민을 망연자실케 한 사건의 진상을 엄정하게 가리는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고 핵심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시는 그런 못된 장난질이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아야 한다. 96년 4·11총선 직전 판문점 북한군무력시위사건처럼 미궁인 채로 넘어가서도 안되지만 이번 일로 억울한 피해자가 생겨서도 안된다. 실체적 진실을 가릴 주체는 어디까지나 수사당국이다. 정치권은 감놔라 배놔라 할 위치에 있지 않다.

사리가 이러한데도 여야 정치권이 전면에 나서 정치쟁점화하는 바람에 뒤죽박죽이 돼버렸다. 지금은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정치적 공세로밖에 안비치는 형국이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이번에도 자칫 정치공방만 벌이다 영구미제로 묻혀버리지 말란 법이 없다. 결국 정치권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 검찰수사 지켜보아야 ▼

우선 여당부터 졸렬했다. 아무리 호재(好材)를 만났기로 그렇게 당장 짓치고 나올 일이 아니었다. 내심이야 어떻든 일단 검찰의 엄정수사를 촉구하고 “수사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정도의 선이면 족했다. 그런데도 마치 검찰수사를 지휘하는 위치에나 있는 것처럼 함부로 막말을 쏟아놓은 것은 사려깊지 못했다. 말로는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면서도 결국은 야당의 정치쟁점화를 도와준 꼴이다.

이회창(李會昌)총재 퇴진론이나 국정파트너 불인정론만 해도 그렇다. 마음에 안든다고 국정파트너로 안삼겠다는 논리 자체도 말이 안되지만 그러니까 의도성이 숨어 있는 것처럼 비치고 ‘이회창죽이기’ ‘야당파괴’기도라는 야당의 반발을 사는 것이 아닌가. 이총재측의 개입혐의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상황이라면 몰라도 수사가 진행중인 마당에 섣불리 예단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만약에 검찰수사결과 무관한 것으로 밝혀진다면 그때는 어찌할 것인가. 야당 내 건전세력 분리론도 공작정치 오해를 사기 알맞다.

야당의 대응도 마찬가지다. 수사망이 조여오는 만큼 해명 변명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무조건 전면부인 전면공세가 오히려 의혹을 증폭시킨 측면이 없지 않다. 실제 ‘총격요청’이 사실이라도 구속된 3인방의 독자적인 행동일 뿐 자신들과는 무관하다면 설득력 있는 근거를 성의있게 제시하고 최선을 다해 수사에 협조할 일이다.

또 만약에 혐의내용의 일부라도 사실이라고 한다면 그 또한 당당하게 자초지종을 털어놓고 응분의 책임을 지겠다는 결의와 용기가 있어야 한다. 어느 경우든 그동안 국회를 거부하고 막가는 말로 장외투쟁을 계속해온 것은 책임있는 자세라 할 수 없다.

▼ 국가장래를 생각할 때 ▼

국회는 일단 정상화하는 모양이지만 여야 대결구도에는 하등 변화가 없다. 국회쪽이 또 얼마나 시끄러울지 알 수 없다. IMF라는 이름의 국가적 위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정치인은 있어도 정치는 없는 상황이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된다. 국가장래도 좀 생각들을 해야 한다. 아무리 내자신 내편이 소중하다 해도 국익(國益)보다 앞설 수는 없다. 강경은 한발짝 뒤로 물러나고 온건과 합리가 앞으로 나서야 한다. 4년이나 5년 뒤를 생각해서라도 이런 정치는 하지 말아야 한다. 5년이란 세월은 긴 것 같지만 금방이다.

남중구(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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