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현장 긴급점검③]폐쇄-축소 줄잇는 연구소 살려야

  • 입력 1998년 9월 29일 19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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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내 기업연구소들이 몰려있는 대전 유성구 신성동 일대.

주방용품업체 L사의 간판이 걸려 있는 3만여평의 부지에는 잡초가 무성하다. 연구소를 짓기도 전에 자금난에 몰린 이 회사는 지난해 이 땅을 E사에 매각했으나 E사도 IMF가 터진후 공사 착공을 못한채 입주계획은 무기한 연기상태.

바로 옆의 D산업 연구소도 올들어 2백70명의 인원을 1백30명으로 절반 이상 줄였다. 부근 H그룹 연구소는 IMF이전 승용차들로 꽉 차 있던 주차장이 텅텅 비어 연구소를 떠난 연구원들의 공백이 어느 정도임을 보여준다.

42개 연구소에 1만2천여명의 연구원이 근무하는 국내 최대의 ‘싱크탱크’ 대덕연구단지가 기업 구조조정 여파로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다.

한화 쌍용 한효 동부 대림 데이콤 등 연구단지에 입주한 대부분의 기업연구소들은 IMF한파로 사정이 어려워진 올해 초부터 연구부서를 해체하고 인원을 대거 감축, 이미 2천여명의 연구원이 단지를 떠났다.

한솔기술원 등 올해 6개 연구소가 새로 입주할 예정이었지만 아직 한군데도 들어온 곳이 없다.

정부출연연구소도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정부가 내년 예산을 20%씩 삭감해 인원을 줄이거나 연구원들의 월급을 그만큼 깎아야할 처지다.연말까지 수백명이 직장에서 퇴출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덕연구단지 뿐만 아니라 기업연구소들이 밀집한 수도권과 구미 울산 창원 등 지역에는 연구원의 대량 실직사태가 줄을 잇고 있다.

수원에 있는 D그룹 기술개발원은 9월초에 1백여명의 연구원을 계열사로 돌려보내거나 퇴직 시켰다. 인근의 D화학도 연구소를 폐쇄한 후 매각하려고 내놓았지만 임자가 없는 상태.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이희열 부장은 “최근 조사결과 대기업 연구소의 80%가 구조조정을 통해 인원과 프로젝트를 줄였고 아직도 그 작업이 진행중”이라며 “일부 벤처기업을 제외한 중소기업들은 한마디로 비참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이 해체되면 그동안 막대한 개발비와 인력을 쏟아부은 연구성과가 물거품이 될수 밖에 없다. 당장 살아남기에 급급해 미래 기업경쟁력의 핵심인 연구개발에 소홀하면 언젠가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더라도 외국에 팔만한 제품이 없어지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다.

대표적인 예가 신소재 분야. 국내 기업들중 쌍용과 동양이 신소재 연구에 쌍벽을 이루었는데 올들어 두 회사 모두 신소재 연구팀을 해체했다. 그 결과 석박사급 연구인력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우리나라 신소재 기술은 최소한 5년전으로 후퇴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

S그룹 L박사는 “반도체 전자 정보통신 등 첨단산업도 연구프로젝트는 그런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연구비가 20% 이상 줄어 당장 상품화가 눈앞에 보이는 연구외에는 손도 못댄다”고 토로했다.

생명공학연구소 K박사는 “정부와 기업이 절반씩 투자하는 G7프로젝트도 기업들이 연구비를 못내 중단되는 과제가 상당수 있다”고 말한다.

KAIST의 경우 2년전부터 환경오염을 방지하는 2억∼3억원 규모의 생계면활성제 연구를 해왔으나 몇달전 기업투자가 끊겨 연구를 중단한 상태.

제너럴일렉트릭(GE) 제너럴모터스(GM) IBM 등 미국 기업들은 80년대 불경기때 오히려 연구개발에 집중 투자했다. 호황기에는 물건을 만들어 팔기도 바빠 연구개발 인력도 현장에 투입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은 정반대다.

KAIST 경종민교수(전기전자과)는 “기업들이 연구개발투자를 외면하는 것도 문제지만 정부에서 나오는 연구개발비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정부 부처마다 연구개발비를 따로 관리해 중복투자나 엉뚱한 과제에 아까운 돈을 날리고 연구결과도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사례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대만처럼 국가과학위원회에서 연구비를 일괄 관리, 산업체에서 연구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과제는 돈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대덕연구단지〓김학진기자〉jean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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