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지역감정 부추기지 말라

  • 입력 1998년 9월 24일 19시 03분


정치권 사정(司正)을 둘러싼 공방이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데까지 비화하고 있다. 누구든지 사정의 문제점을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사정대상에 오른 정치인이 사정에 저항하는 방편으로 특정지역의 민감한 정서를 건드리는 것은 백번 생각해도 옳지 않다. 정치적 입장 때문에 국민의 가슴에 상처를 남긴대서야 말이 되지 않는다. 다른 방법이라면 몰라도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사정에 대한 야당의 반발은 이해할 수 있다. 당의 중진을 포함해 여당보다 훨씬 많은 인사들이 검찰에 소환되고 엊그제까지 한솥밥을 먹던 의원들이 줄줄이 여당으로 옮겨가는 현실을 야당으로서는 ‘표적사정’이나 ‘야당파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본란 또한 사정의 형평성에 대해 거듭 의문을 표시하고 여당의 압력이나 회유에 의한 의원영입은 잘못이라고 지적해왔다. 사정은 마땅히 공정하고 투명해야 하며 무원칙한 ‘의원 빼가기’는 자제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도 야당간부가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자극한 것만은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보도에 따르면 야당의 부산집회에서 이기택(李基澤)씨는 “(현 정부가) 부산경제를 다 죽이고 부산의 아들 딸을 직장에서 몰아내며 국민세금으로 대통령 출신 지역만 먹여살린다”고 말했다고 한다. 과거에 야당총재로 일했고 지금 야당에서도 총재권한대행까지 지낸 중진 정치인으로서 사려깊지 못한 지나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그는 비리혐의로 검찰의 소환을 받고 있다. 소환에는 불응하면서 거리에 나가 그런 말을 한 것은 책임있는 태도라고 볼 수 없다. 자신의 비리혐의를 지역정서로 호도하려 했다면 그것은 법의식과 국가의식 이전에 최소한의 양식까지 의심하게 만든다.

재삼 말할 것도 없이 지역감정은 ‘망국병’이라고 할 만큼 폐해가 심각하다. 선거 때마다 나라가 동서로 갈리는 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국론을 분열시키고 공동체의 일체감을 훼손해 국가발전에 중대한 장애로 작용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을 바로잡지 않고는 21세기를 희망으로 맞기 어렵다. 그 일차적 책임은 정치권에 있다. 그러나 정치권은 정략적 발상으로 지역정서를 선동하고 악용해왔다. 이제는 그것을 끊어야 한다.

정치권이 지역화합에 앞장서지는 못할망정 지역간의 골을 오히려 깊게 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무책임한 언사로 주민들을 현혹하려 한다면 그것은 주민에 대한 모독이다. 야당이 장외집회를 특정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여는 것도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 정치인들은 냉철해져야 한다. 눈 앞의 정치적 이해(利害)보다 국가와 국민의 장래를 먼저 생각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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