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 특집]마이폰시대 「생활혁명」 개막

  • 입력 1998년 9월 23일 19시 38분


자동차 영업사원 K대리(33).

잠결에 머리맡의 휴대전화가 ‘삐리릭’ 소리를 낸다. 수화기를 들자 “지금 아침 6시입니다. 출근준비 할 시간입니다.” 휴대전화업체의 자명종서비스.

K대리는 뉴스와 날씨도 휴대전화의 문자정보서비스를 통해 알아낸다. 아내 몰래 투자한 주식의 시세나 그가 좋아하는 프로야구 스코어도 하루에 몇번씩 휴대전화로 확인한다. 친구와의 약속은 음성사서함을 이용하고 결혼기념일은 해피콜서비스의 도움을 받아 기억해낸다.

이젠 잠시라도 품안에 휴대전화가 없으면 불안하다. 배터리가 떨어져 휴대전화를 꺼둔 날이면 왠지 일이 손에 안 잡히고 실수를 연발하다가 ‘대형사고’를 친다.

신혼주부 L씨(27).

결혼기념으로 남편과 함께 장만한 개인휴대통신(PCS) 전화기로 시간날 때마다 사랑의 밀어를 속삭인다. 유선전화는 통화중이거나 자리를 비워 ‘불통’될 때가 많지만 PCS는 그럴 염려가 없는 것. 남편이 회의중일 때는 ‘엽서보내기’기능을 이용해 쪽지를 남긴다.

시부모와 함께 사는 L씨는 요즘 PCS의 용도가 하나 늘었다. 아파트 베란다에 나와 PCS로 친정엄마를 살짝 불러내 요리법을 물어보거나 고달픈 시집살이를 하소연 하는 날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가입자가 1천1백만명을 넘어섰다.

84년 휴대전화서비스가 국내에 도입된지 14년만이다. 가입자수에서 보면 세계 5위의 이동통신 선진국.한국보다 가입자가 많은 나라는 미국 일본 중국 이탈리아 4개국뿐. 보급률은 23.9%로 세계 9위. 1가구당 1대꼴이다.

최근 5년간 해마다 100%씩 가입자가 늘어 이런 추세라면 99∼2000년에 1천5백만명, 2002∼2003년에 2천만명을 돌파할 기세다.

‘마이카’ ‘마이컴’시대를 지나 ‘마이폰’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온가족이 함께 쓰는 ‘우리집’ 전화가 아니라 K대리나 L씨처럼 ‘나만의’ 전화를 갖는 ‘휴대전화족’이 늘고 있다.

시간과 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사람과 통화가 가능한 마이폰의 등장은 우리 생활 전반을 변화시키고 있다.

신세대들 사이엔 의사소통의 새로운 문화유형으로 ‘잡담문화’란 말까지 생겼다.

길거리나 지하철 또는 버스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통화하는 모습은 더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휴대전화가 들어가는 옷이나 가방이 유행하고 휴대전화용 액세서리가 젊은 여성들의 패션용품으로 불티나게 팔린다.

남대문 청계천의 인력시장이 사라진 대신 막노동자도 집에서 휴대전화로 연락받고 바로 노동현장으로 달려나갈 정도고 친구들끼리 여행갈 때는 고속도로에서 휴대전화로 서로 연락하면서 위치를 확인한다.

직장에서 밀려난 실직자들이 ‘걸어다니는 사무실’인 휴대전화를 연락수단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IMF에도 불구하고 휴대전화 사용자가 크게 늘어났다는 분석도 있다.

PCS 3사의 가입자를 분석해보면 가입자의 65%가 20, 30대 젊은층이다. 여성가입자도 27%나 된다. 업무용으로 쓰는 사람은 4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개인 용도로 쓴다.

그래서 외국에는 업무시간인 오후2∼5시가 휴대전화 ‘러시아워’인데 우리나라는 퇴근시간인 오후6∼8시에 사용량이 많다. 사용자들이 유난히 작고 예쁜 단말기를 선호하는 것도 사적 용도로 주로 쓰기 때문.

휴대전화가 대중화되면서 이에따른 부작용도 만만찮다.

식당이나 커피숍 때로는 조용히 해야 하는 연주회나 시험장에서 ‘시도 때도 없이’ 터져나오는 휴대전화 소리 때문에 분위기를 망치는 경우가 많다. 요즘에는 군밤타령 옹헤야 스와니강 산타루치아 등 벨소리도 다양해져 무슨 소리인지 몰라 당황할 지경이다. 휴대전화에서 가장 널리 쓰는 말이 “난데” “거기 어디야”라는 조사결과가 나온 적도 있다. 사업이나 깊이있는 대화보다 대면해서 잡담하는 듯한 내용이 많다는 얘기다.

모 회사에서 가족이나 친지간 휴대전화 통화를 무료로 하는 ‘패밀리서비스’를 내놓았다가 일부 가입자들이 몇시간씩 통화하는 바람에 시스템이 다운된 웃지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어떤 가입자는 ‘공짜’라는 말에 17시간 연속통화를 하는 기록을 세웠다고.

움직이는 마이폰. 잘 이용하면 생활에 도움을 주는 ‘문명의 이기’이지만 잘못 쓰면 망신스럽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애물단지’가 되기 십상이다.

〈김학진기자〉jean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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