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손호철/국회를 정상화하라

  • 입력 1998년 9월 22일 19시 12분


김대중(金大中)정부 출범 후 첫 정기국회가 10일 개회됐지만 국회는 개점휴업상태로 헛돌고 있다. 정상대로라면 국정감사일정을 잡고 여야의원들은 의원회관의 불을 밝히고 국감준비에 여념이 없어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여야는 정치권사정과 야당의원빼가기 문제를 둘러싸고 의사당 밖에서 치고 받고 단식투쟁까지 벌이는 이전투구를 하고 있다.

IMF관리체제라는 국가위기상황임에도 과거정권에서 식상할 정도로 많이 봐온 구태를 그대로 연출하고 있다.

너죽고 나살자식의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는 여야를 보면 그들이 과연 민생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민생은 뒷전이고 정쟁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국민 눈에 비치는 것은 당연하다.

▼ 국세청모금 책임져야 ▼

사실 문제는 간단하다. 한나라당은 무조건 국회로 돌아와 국회를 정상화시켜야 한다. 국세청을 동원한 대선자금 모금은 누가 뭐라 해도 변명할 수 없는 사안이다.

따라서 관련자는 사법적 처리에 응해야 하며 당 차원에서도 어떤 방식으로든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와는 별개로 경성비리 청구사건 등과 관련한 정치권사정의 표적시비, 여권의 대선자금 문제등 한나라당의 주장에 타당한 점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역시 국회를 정상화한 가운데 필요하다면 단식투쟁 장외투쟁을 병행하는 방식을 택해야지 국회를 정치적 협상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된다. 즉 한나라당의 주장처럼 문제가 야당의 생존이 걸린 심각한 문제라면 자신들의 의무인 국회 활동을 하면서 단식도 하고 과외시간에 장외투쟁을 병행하는 비장한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도 못하겠다면 단순히 협박용으로 국회의원 사퇴서를 당 총재에게 제출할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국회의원직을 사퇴, 국회해산을 요구하고 재선거를 통해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여당과 검찰 역시 해법은 간단하다. 즉 국민 눈에 공정치 못하게 비치는 표적사정을 중단하는 것이다. 정대철(鄭大哲)국민회의부총재 이기택(李基澤)한나라당전부총재 이부영(李富榮)한나라당의원으로 이어지는 사정리스트는 도저히 우연이라고 할 수 없는 ‘괘씸죄’에 의한 단죄라는 의혹을 버릴 수 없다.

4천만원 이상의 금품수수가 사정의 기준이라면 과연 몇 명의 국회의원이 이 기준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대다수 국민은 의문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문제의 경성비리사건과 관련해서도 이미 거액의 금품을 받은 것으로 한나라당이 명단을 폭로했던 국민회의의 중진의원, 자민련의 핵심 실세 의원, 국민신당에서 최근 국민회의로 자리를 옮긴 구민주계의 실세의원 등과 관련된 의혹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

즉 한나라당의 주장이 사실무근인지, 아니면 사실이되 액수가 현재 사정대상 의원들보다 적은 것인지, 아니면 대가성이 없는 것인지 밝히지 않는 한 표적수사의 시비를 벗어날 수 없다.

특히 이미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의 정치비자금 사건을 통해 포괄적 뇌물죄가 인정된 상황에서 대가성 여부라는 자의적인 기준을 사정의 잣대로 삼는 것은 문제다.

그러나 표적사정을 중단하라는 것이 김대중대통령이 밝혔듯이 ‘필요 없이 사정을 길게 하거나 범위를 넓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 검찰 성역없는 수사를 ▼

해답은 여야간의 야합에 의한 또 한차례의 ‘비리 봉합’이 아니라 오히려 발본적 사정확대, 즉 그간의 의혹이 되어온 모든 의혹에 대한 성역없는 사정이다.

최근의 여론조사도 현수준에서의 사정 중단을 바라는 국민은 34%에 불과하고 28%는 현 정치권의 모든 비리사건의 수사를, 나아가 33%는 김대통령의‘20억원 +α’까지의 수사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같은 성역없는 수사는 여권이 과거 주장해온 특별검사에 의한 중립적이고 심도있는 수사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표적수사를 중단하고 부패방지법 제정을 통해 부패를 예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물론 부패방지법은 반드시 제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검찰의 독립성이 보장되어 있지 않고 검찰의 기소독점이 유지되고 있는 한 부패방지법을 만들어도 이를 편파적으로 적용함으로써 표적사정은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부패방지법 제정 자체가 아니라 검찰의 독립과 특별검사제의 제도화다.

손호철(서강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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