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편지]이순이/교과서 표지싸는 딸에게

  • 입력 1998년 9월 22일 19시 04분


“엄마. 책표지 좀 입혀주세요.” “그냥 쓰지 그러니. 한 학기만 그럭저럭 쓰면 될텐데.” “제가 쓰고 나면 4학년 동생들이 다시 볼건데 책표지가 깨끗해야 새책 같잖아요.”

초등학교 5학년인 딸아이가 2학기 교과서중 절반 정도를 헌 책으로 받아와서 하는 말이다. 자기 용돈으로 산 포장지를 함께 꺼내 놓으며.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으레 언니 오빠로부터 책을 물려받을 생각을 했고 겉옷은 물론 속옷까지도 고스란히 물려입곤 했었다. 새학년이 되어 교과서를 물려 받게 되면 철이 지난 달력으로 책표지를 곱게 싸곤 했던 게 엊그제 같다.

나라가 경제위기에 처하고 살림도 극도로 위축되어 있는 요즈음. 아들녀석이 아침저녁으로 ‘아나바다 운동’을 외고 다니며 철든 행동을 보이더니 이번엔 딸아이의 기특한 마음씨가 가슴을 뿌듯하게 한다.

학년 초 딸아이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장래 희망을 조사하는 설문지를 받고는‘인류를 위해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적어 주었었다. 물론 인류의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하라는 거창한 의미는 아니었다. 자기와 똑같이 남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을 뿐. 잠든 아이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올곧게 자라주길 소망한다.

이순이(전남 영광군 영광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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