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남은자/병석에 누운 고3딸에게

  • 입력 1998년 8월 17일 20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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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딸이 올해 고3이다. 허리가 아파 며칠째 방에 누워 치료를 받고 있다. 몸이 불편한데도 공부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것을 보니 안타깝다. 딸 넷, 아들 하나의 5남매를 키우면서 고3 학부모는 이번이 마지막이다.

하루에 도시락을 7개씩 싼 날도 있었지만 나보다도 아침 7시부터 밤늦게까지 딱딱한 의자에 앉아 공부만 해야 하는 우리 아이들의 정서가 걱정되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에게 공부만이 최선이고 전부인가 하는 회의도 든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이 안된 둘째딸의 처진 어깨를 보면 더욱 그렇다. 지금의 아이들과는 너무 다르지만 내게도 학창시절이 있었다. 가을엔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귀기울이던 달이 아름다운 밤이 있었다. 삼산을 끼고 동네를 타원형으로 돌며 흐르던 맑은 물줄기와 그 물살속에 반짝이던 하얀 돌멩이들과 은어떼들이 있었다. 내 아이들이 나처럼 쉰살이 넘어서 돌아다본 이십대는 어떤 색깔의 추억들일까. 아름다운 대자연의 의미와 막연한 동경과 기다림의 설렘이 남아 있을까.

비록 나와 같은 기억들은 아니라도 혼탁한 세상속에서 삶의 진실만은 버리지 않고 자라 주었으면 하는게 가을을 기다리는 엄마의 작은 염원이다.

남은자<광주 북구 문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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