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창]김선화/언어분쟁 골치앓는 벨기에

  • 입력 1998년 8월 17일 20시 09분


2년여간의 벨기에 생활에서 가장 뼈저리게 느낀 것은 ‘말’의 의미다. 벨기에는 말이 문제인 나라다. 벨기에의 공용어는 3가지. 인구의 55%가 프랑스어를 사용하며 44%는 플레미시를, 나머지 소수는 독일어를 사용한다.

벨기에의 모든 경제 사회 문제는 언어분쟁과 연관된다. 얼마전 98프랑스월드컵중에도 벨기에 대표팀은 프랑스어권과 플레미시권이 따로 식사를 했다. 프랑스어권의 한 선수는 플레미시권 코치와의 갈등으로 경기시작 20분 전에 교체되기도 했다.

지난달 벨기에는 유럽연합(EU)집행위원회와 유럽사법재판소로부터 최후 통첩을 받았다. 벨기에에 거주하는 다른 EU 국가 국민에게 계속해서 지방선거 투표권을 주지 않을 경우 하루 2억6천만원에 달하는 벌금을 물리겠다는 것이다. 현재 다른 EU 국가가 모두 시행하고 있는 이 제도를 벨기에는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역시 언어분쟁 때문이다. 외국인은 플레미시보다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이들에게 투표권이 인정된다면 프랑스어권에 유리한 방향으로 투표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플레미시권이 시행을 강력히 막고 있는 것이다.

벨기에의 학교에서는 상대방 언어가 필수가 아니라서 서로 상대방 언어보다는 영어를 선택한다. 따라서 두 언어권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같은 나라 사람이면서도 외국어인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밖에 없는 벨기에 사람들을 볼 때마다 우리가 하나의 글과 하나의 말을 갖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김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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