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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6월 23일 19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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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전감독에겐 참으로 먼 거리처럼 느껴졌을것 같다. 그라운드를 질풍처럼 달려온 축구 인생이 안쓰럽게 넘어지는 ‘영웅 몰락’의 순간만 같아 보였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일으킨 ‘차붐’신화(神話)와 월드컵 예선전에서 그에게 쏟아졌던 ‘유럽식 압박축구를 도입한 한국축구의 자존심’ ‘컴퓨터축구의 황제’ ‘냉철한 승부사’ 등의 달콤하기 짝이 없는 온갖 찬사는 온데 간데 없었다.
불과 10여분동안 이 짧은 길을 걸어가는 사이 가벼운 파도에 모래성이 무너지는 것을 보는 느낌이었다.
입국 1시간여전부터 차전감독을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 1백여명은 차감독이 게이트에 나타나자 마자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그의 한 걸음 한 걸음은 엉켜붙는 취재진에 매번 제지됐고 그는 몇번이고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 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월드컵 4회연속 본선진출을 이룩한 맹장(猛將)에 대한 예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번 월드컵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질 의향이 있습니까.
“책임을 지기 위해 이렇게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헌신짝 내버리듯, 경질됐다고 해서 기자회견장 하나 마련하지 않고 마치 죄인이라도 되는 양 차전감독을 경찰 병력에 에워싸인 채 도망치 듯 입국장을 빠져나가게 한 축구협회의 무신경.
그래도 몇몇 ‘성숙한 시민’들이 그에게 “수고하셨어요” “힘내세요”라는 말과 함께 보낸 ‘작은 박수’가 정말로 소중하게 느껴졌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고 만 축구보다도 ‘미래의 한국 축구’ 그리고 2002년이 아닐까.
나성엽<사회부>news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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