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시청자 속인 다큐멘터리

  • 입력 1998년 6월 18일 19시 12분


KBS가 지난달 방영해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자연다큐멘터리―수달’이 야생 수달이 아니라 사육 수달을 철조망을 쳐놓고 촬영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또 SBS가 최근 방영한 ‘그것이 알고싶다―신종 인신매매, 아직도 사람이 팔려가고 있다’도 일용 노동자를 인신매매 중간책인 속칭 ‘빠리꾼’으로 오해할 수 있도록 프로를 구성, 조작의혹을 사고 있다. 방송에 대한 신뢰를 땅에 떨어뜨리는 개탄스런 일이다.

‘수달’은 강원 인제군 내린천에 서식하는 ‘수달 남매’의 성장과정을 장기간에 걸쳐 촬영한 수준 높은 다큐멘터리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방영 직후부터 ‘철조망을 쳐놓고 촬영했다’ ‘야생 수달이 아니다’는 현지 주민들의 제보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말썽이 나자 제작진은 주인공격인 수달 남매는 야생이 틀림없고 조연급의 수달만 사육 수달이라고 일부 시인하다가 결국 남매 수달도 사육 수달임을 시인했다. 방송인으로서의 양식을 묻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수달은 천연기념물 330호로 보호되고 있어 상해(傷害)는 물론 허가없이 소유하는 것도 처벌받게 돼 있다. 더구나 계곡 양쪽에 철조망을 쳐 수달의 자연 속에서의 삶을 방해한 행위는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의 근본목적을 망각한 처사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줘 시청자들의 자연보호의식을 고양(高揚)시키는 것이 자연 다큐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인신매매범을 다룬 SBS의 고발프로도 ‘빠리꾼’으로 지목된 사람이 제작기간 중 경찰조사에서 일용 노동자로 밝혀졌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마땅했다.

‘미끼’로 연출시킨 여학생에게 접근한 일용 노동자에게도 문제는 있으나 ‘빠리꾼’으로 짐작할 수 있도록 프로내용을 구성하고 방영한 것은 중대한 인권침해다.

두 사건이 아니더라도 최근 TV의 일부 다큐멘터리나 고발프로는 센세이셔널리즘이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방송에서 특수한 소재로 높은 시청률을 올리면 다른 방송에서는 그보다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소재를 찾는 게 시청률 경쟁에 매달린 우리 방송의 폐단 중 하나다. 소재가 마땅찮으면 이번 사례처럼 무리수가 동원되는 것이다.

방송윤리를 거론할 것도 없이 자연 다큐멘터리는 ‘자연 그대로’가, 고발 프로는 ‘진실’이 생명이다. 시청자들은 진실이기 때문에 감동하고 분노한다. 자연 다큐에 인공이 가미되고 고발 프로가 사실과 다르다면 누가 방송을 믿겠는가.

방송사와 방송위원회는 시청자를 속이고 우롱하는 유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다큐나 고발프로 제작의 원칙과 윤리를 재천명하는 등 세심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시청자는 거짓 방송을 외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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