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봉순이 언니(7)

  • 입력 1998년 5월 7일 0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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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사람들 무섭지. 조금이라도 말을 안들으면 글쎄 그 어린 것을 굶기기도 하고 평소에는 솥에다가 밥을 안칠 때 쌀을 밑에다 깔고 그 위에는 보리쌀을 얹어서 봉순이는 보리밥만 퍼준 모양이야. 게다가 애를 얼마나 팼는지 내가 이가 있나 보려고 옷을 벗겨보니까 온몸이 성한 데가 없어. 이는 또 왜 그렇게 많은지 서캐가 한말이었다니까. 그 어린 게 비비 말라 비틀어져가지구는 가엾어서 쳐다볼 수가 없더라구… 내가 그때 냉천동 그 집사네 집에 세들어 살면서 안집의 식모인 그애가 하두 불쌍해서 남은 밥도 주고 누룽지도 주고 하니까 이 녀석이 우릴 따라 도망온 거 아니니. 우리가 냉천동에서 아현동으로 이사올 때 그 애가 그 집에서 도망쳐서 우릴 쫓아왔기에 얼마나 놀랬는지.

―참 생각해보면 봉순이 고것도 당돌해. 그때 고작 열 한두살 아니유? 어떻게 언니를 쫓아서 도망올 생각을 다 했을까 먹구살기도 힘든 집에 말이야….

―사람이 그리웠던 게지.

―하기는 그 전에 집에서도 도망나왔다고 했지, 대체 그게 몇살 때야?

―아마 예닐곱살 먹었을 때겠지. 의붓아버지가 자꾸 패니까 글쎄 속옷보따리를 자주 보자기에 싸서 도망쳐나왔댄다. 얼마나 우습니, 글쎄 그 빤스하고 란닝구라는 게 다 떨어진 누더기였을 텐데 말이야….

어머니와 이모는 소녀처럼 깔깔거렸다. 나는 밥을 먹으면서 어머니와 이모의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깻잎을 하얀 밥위에 얹으면서 나는 봉순이 언니의 얼굴을 떠올렸다. 떠오르는 봉순이 언니는 참 뭉툭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어렸을 때 물마마를 앓았다던가 해서 살짝 얽힌 얼굴, 쌍꺼풀 없이 두터운 눈꺼풀, 뭉툭한 코, 아랫입술이 윗입술보다 더 비져나온 입매무새. 하염없이 길어서 거의 엉덩이까지 내려온 윤기없는 머리카락. 언니의 얼굴 어디에도 도망치는 자 특유의 당돌함은 없었다.

―그러다가 지 에미가 어떻게 친정에 맡긴 모냥이라. 새 남자에게서 아들두 태어났구. 그래 갸가 외할머니네 집으로 어떻게 갔는데 숙모라고 뭐 지 먹고 살기 힘든데 뭐가 반갑겠니. 창경원에 벚꽃놀이가자고 애를 꼬드겨가지고는 그 사람 많은 데서 손을 놓아버린 거라.

어머니는 숭늉 밑에 남은 밥알을 숟가락으로 훑어 내게 떠먹이며 차근차근 말했다.

―지난번에 김밥 싸가지고 창경원에 갔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랬는지. 글쎄 걔가 꼭 여섯살 먹은 애 모냥 내 손을 붙들고 놓지를 않는 거야. 그래 내가, 봉순아 이 아줌마는 절대로 널 여기 빠뜨리고 가지 않는다, 타일렀지. 그러니까 알아요, 하고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을 하는데 눈물이 글썽글썽해서는… 그러니 타일러도 소용이 없어,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지구는 그 순한 애가 아무리 말해도 내 말을 듣지를 않는 거야 내 치맛자락을 꽉 붙들고 말이야. 내가 그날 애들 넷 데리구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벚꽃이 하얗게 피었는지 노랗게 피었는지도 모르겠더라니까… 세상에 애가 둔하고 무던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어린 마음에 그 기억이 꽤나 쓰라렸던 모냥이야.

―세상에… 그랬구나, 어쨌든 그 외숙모라는 사람도 그렇지. 조카 아니야, 아무리 시댁붙이라고 해도 어떻게 사람들이 그럴 수가 있어.

<글: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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