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훈구/1998년 한국의 어린이들

  • 입력 1998년 5월 4일 19시 55분


올해도 어김없이 어린이날이 돌아와 온 가족이 모처럼만에 하루를 단란하게보내고 있다. 세계에서 유독 한국만 어린이날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인에게는 한국이 어린이 천국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 아동이 누리는 삶의 질은 저개발 국가의 그것과 별로 다름이 없다. 며칠전 국내의 모 TV 방송에 비추어진 영훈군 자매에 대한 학대 현장은 우리 아동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에서만 발생하는 일가족 집단 자살은 사실 자녀에 대한 타살인데 한국인의 소유물적 자녀관을 보여준다.

▼ 상당수 부모소유물 취급 ▼

한국의 아동보호 및 복지법은 아직 선언적 수준에 머물러 있고 현실과는 큰 괴리가 있다. 그러나 우리와 달리 외국의 아동보호법은 주민의 일상생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교사나 소아과 의사가 아동에게서 학대로 의심되는 상처를 발견하면 즉각 부모를 소환해 혐의를 가린다. 만일 자녀학대가 증명되면 그 부모는 사직 당국에 고발당한다. 한국에서 교사와 의사가 이러한 행동을 취하면 부모들은 어떤 행동을 보일까. 아마도 그들은 남의 일에 상관하지 말라고 거세게 반발할 것이다.

우리의 아동보호법은 아직 일반론에 머물러 있다. 우리는 최근에 와서야 학교 통학버스가 정차할 경우 뒤따르는 일반 차량은 무조건 멈추어야 한다는 법규를 마련했지만 이것은 외국인에게는 오랫동안 몸에 밴 교통습관에 불과하다. 교통법규야 있든 말든 학교 앞 좁은 길에서 과속으로 질주하는 차량 때문에 수많은 한국 아동이 희생되고 있다.

어린 자녀들만 달랑 남겨놓은 채 부모가 외출해 아동들이 화재나 기타 안전사고로 사망해도 우리는 부모에게 그 책임을 묻지 않는다. 외국에서 베이비 시터란 아르바이트가 성행하는 것은 국민 모두 아동을 보호하고 아끼려는 마음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우리의 예는 교육을 못받은 저소득층 아동의 현실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는 우리의 중상류층 아동들은 티없이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고 강변할 것이다.

그러나 중상류층의 자녀들은 신체적 학대가 아닌 정신적 학대에 시달리고 있다. 부모의 치맛바람, 과중한 과외, 부모의 과잉기대, 과잉보호 속에 중산층의 자녀는 핏기를 잃어가고 있다. 정신적 학대는 신체적 학대 못지않게 아동에게 정신적 상흔을 남긴다. 청소년이 길거리를 방황하고 본드에 흐느적거리는 원인은 이들이 일찍부터 학업 경쟁에서 자신을 잃었기 때문이다.

자녀에 대한 과잉보호도 일종의 정신적 학대다.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결혼할 때 온갖 살림살이를 다 갖춰주며 또 수많은 유산을 자녀에게 남겨주려는 한국 부모의 심리 뒤에는 자녀를 영원히 속박하려는 지배심리가 깔려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꼬박꼬박 여러 곳에서 물고 있는 교육세가 과연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 어린이날에 다시 한번 따져봐야 한다.

초중고교에 점심을 싸오지 못하는 학생이 평소 한 반에 한두 명이던 것이 국제통화기금(IMF)시대를 맞이해 점차 늘고 있다. 한껏 배불리 먹어도 금방 허기가 지는 청소년에게 한 끼의 굶음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를 교육부는 과연 알고 있을까. G7 프로젝트도 중요하고 교수의 해외 연수도 중요하지만 아동을 배불리 먹이는 과제가 더 시급하다.

▼ 교육세 어디에 쓰는지… ▼

올해의 어린이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암울하다. IMF한파가 몰아닥쳤기 때문이다. 실직한 가장은 자녀의 학비를 걱정해야 하고 자녀들은 용돈을 줄여야 한다. 축 처진 아동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길은 부모가 자녀관을 바꾸고 그리고 우리의 학교 교육을 새롭게 짜는 것이다.

우리 아동을 정신적 신체적 학대에서 해방시키자. 학교가 즐거운 놀이터가 되게 하고 환희의 합창이 울려퍼지는 노래 교실이 되게 하자. 공부시간은 반으로 줄이고 교과서도 반으로 줄이자. 그러면 IMF한파를 이겨낼 수 있는 강인한 힘이 우리 청소년에게서 솟구칠 것이다.

이훈구(연세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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