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헝그리 정신」/풍요좇는 자본주의 목표는…

  • 입력 1998년 4월 24일 07시 25분


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난방(煖房)을 필요로 하지만, 이미 충분히 따뜻하다면 더 이상의 난방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이는 권력자와 기업가들에게 매우 ‘불안한’ 소식이다. 사람들이 이제 더 이상 ‘더 많고 많은’ 빵을 원하지 않는다면 무슨 수로 그들을 즐겁게 해줄 것이며, 또한 무슨 수로 그들을 통제할 것인가.

바로 그 애덤 스미스가 말하지 않았던가. ‘시장의 성장을 반대할 사람은 없겠지만, 성장의 본질은 …세상의 모든 쓸모없는 것들을 원하는 끊임없는 수요 속에서 맹목적으로 무한히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금과 같은 속도로 성장한다면 우리는 1백년 뒤에는 모든 것을 16배로 소비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지금보다 16배로 음식을 먹고, 16배로 석유와 가스를 소비하고, 16배로 자동차나 텔레비전을 사고…. 도저히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은 이런 부(富)를 축적하는 게 대체 무슨 소용인가?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경제철학자 찰스 핸디의 ‘헝그리 정신’(생각의나무 펴냄).

다국적 석유회사의 경영자, 런던 경영대학 교수, 학술원 회장을 지낸 저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저자. 그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인해 지저분해진 목욕물 속에 들어가 있는 ‘자본주의라는 아기’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저자의 논점은 어쩌면 단순하다.

공산주의는 하나의 대의(大義), 가난으로부터의 해방을 약속했으나 이를 이행할 메커니즘이 없었고 자본주의는 그 메커니즘은 있으나 우리가 그 메커니즘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라는 대의가 없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 그 대의를 규정해야 할 때라고 저자는 말한다.

충분히 커지면 더 커지려고 하기보다는 더 좋아지려고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본주의는 이제, 더 많은 생산성보다는 더 나은 공정성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 ‘장미가 꽃을 피우려면 가지를 치지 않으면 안된다….’

자본주의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 평가하는 저자. 어쨌든 우리는 그 덕분에 스스로의 삶을 선택할 수 있고 책임질 수 있는 물적 토대를 이루어내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저자는 단언한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다만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된 지금, 유일한 문제는 과연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가 이뤄낸 진보의 끝에서 우리는 한때 아담과 이브가 서 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 다시 서 있다….’

인생은 더 이상 먹고 일하고, 일하고 먹는 제자리 걸음일 수 없다. 영국의 코미디언 빅토리아 우드가 자신의 삶을 풍자한 것처럼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북쪽에서 태어나/몇 마디 농담을 했고/건조기에 브래지어를 돌리다가 두 개를 버렸고/죽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치들의 울음소리’에 현혹되지 말라고 한다.

‘수천 수만마리의 여치가 양치식물 아래서 끈질긴 울음소리로 들판을 채우고 있는 동안, 소들은 참나무 그늘 밑에서 조용히 되새김질을 하고 있다. 소들은 단지 시끄럽게 울어대는 여치들이 스스로를 들판의 유일한 존재로 여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작고, 오그라지고, 비쩍 마른데다, 튀어다니고, 한 철밖에는 살지 못하는 가여운 여치….’

물질주의 시대의 수사학, 돈의 언어에 끌려다니지 말라는 이야기다. 조용히 자기 자신을 되새김질하며 삶을 꾸려나가라는 것. 저자의 충고는 이어진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지 말아라. 겉치레를 그만두어라. 더 이상 삶을 낭비하지 말아라.

‘나 자신 위에 얹어져 있는 나는 가짜이다…(릴케).’

우리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자아에 굶주려 있는 것은 아닌지. 진정한 자아를 만나라. 거듭나라. 그래서 마침내 ‘자기 자신의 껍질’ 속에서 편안해져라. 진정한 ‘자기 자신에 이르렀을 때/그대는 또 다른 그대의 환대에 미소지으리….’

역사와 현실은 증발하고 개인만 남았어…. 누군가는 이쯤에서 반발할 것이다. 너무 부르주아적이군. 이렇게 냉소할지 모른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후쿠야마의 말대로 ‘역사의 종말’이 아닌가. 역사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중산층을 압박하지 않는 편안함. 그것은 이 책의 미덕이기도 하다.

계속되는 저자의 이야기. 이 모든 변화는 나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세상의 변화를 원한다면 너 스스로가 변하라.

‘완벽한 형태는 돌덩어리 속에 숨어 있다. 필요한 것은 그것이 드러날 때까지 깎아내는 것이다…(미켈란젤로).’

저자의 말에 수긍하는가? 아닌가?

어쨌거나 어떤 철학,어떤 주의도 그것이 삶의 진실에 관한 한 절대적으로 증명될 수는 없다. 우리 스스로 자신의 삶을 이끄는 믿음을 선택할 뿐이다. 믿음이란 사실이 고갈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것 아니던가.

그 어느 편에 서든 저자의 마지막 한마디는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는 이 한마디를 위해 그 먼길을 돌아왔는지도 모른다. “우리 시대의 최대의 빈곤, 그것은 바로 ‘영원의 결핍’이다….”

〈이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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