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구칼럼]밀레니엄 石塔

  • 입력 1998년 4월 10일 19시 57분


새로운 천년, 또 하나의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2001년을 약 1천일 앞두고 지구촌 각국은 벌써부터 ‘그 순간’을 의미있게 맞을 준비로 부산하다. 런던의 템스 강변에는 총공사비 12억달러(약 1조7천억원)가 드는 거대한 ‘밀레니엄 돔’ 공사가 진행중이다. 파리의 센 강변에는 2백m 높이의 ‘지구탑’이 건설된다.

두차례 화성탐사선 발사를 계획중인 미국에서는 원단(元旦)참배 유람선 관광투어 모집이 한창이다.

▼ 4,680만 국민이 돌 하나씩 ▼

영속적으로 흐르는 시간에 획을 그어 마디를 정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만의 특성일 것이다. 그런 시간의 마디에 서서 과거를 되돌아보며 다가올 미래를 새롭게 설계하고 다짐한다는 것은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도 나쁘지 않다. 한해 한세기도 그러한데 하물며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는 마당이고 보면 감회들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1000이라는 숫자가 갖는 역사성 시간성 상징성을 무시하기 어렵다.

우리라고 계획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가올 21세기는 우선 문화의 세기일 것으로 보고 지난해 10월 문화비전2000위원회를 중심으로 ‘국제수준에 뒤지지 않는’ 갖가지 기념사업을 짜놓았다. 밀레니엄 축제광장 조성, 상징탑과 문화의 다리 건설, 문화 타임캡슐 매설, 황룡사 9층석탑 복원, 종합예술축제 개최 등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바로 그 한달 뒤 느닷없이 밀어닥친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로 이 모든 ‘야심적’인 계획들은 엉거주춤 공중에 떠버렸다.

경제가 말이 아닌 나라형편상 거창한 조형물이나 대규모 이벤트같은 것은 아예 엄두도 내기 어렵다. 그렇다고 남들이 다 하는 지구촌 축제인데 우리만 그냥 넘어가기도 서운하고 속상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큰 돈이 안들면서도 의미있는 사업은 없는 것일까.

방법은 있다. 돌멩이가 대안(代案)일 수도 있다. 우리 주변에 흔한 것이 돌이다. 전국민이 돌 한개씩을 추렴해 석탑(石塔)을 쌓는 것이다. 새롭게 천년을 맞는 시점, 이 땅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원통하게도 IMF관리체제라는 국난을 맞아 고통스러운 나날과 삶에 쪼들린 나머지 이렇게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는 절절한 심정을 거기에 담아 후세에 전하는 것이다.

나라를 한때 위기에 빠뜨린 조상들의 어리석음과 자괴심(自愧心), 이러 이러하게 잘못하면 국가가 위태로워진다는 교훈과 경계, 그리고 미래에 대한 소망이 차곡차곡 쌓인 조형물로서 이 돌탑이 갖는 기념비적 가치와 상징성은 대단할 것이다.

템스 강변의 돔이나 센 강변의 지구탑에 비길 바가 아니다. 참여인원의 많음에서도 전무후무할 것이다.

조약돌이든 정원석이든 돌의 크기에는 제한을 둘 필요가 없다. 현장을 직접 찾아 던져 넣거나 쌓아도 좋고 우편 또는 지역별로 수집해서 전달하는 방법도 있겠다. 원한다면 돌에 자기 이름을 새길 수도 있고 경구(警句)를 넣어도 좋을 것이다. 서울 도심이 좋을지 한강변이 좋을지 위치선정은 중지를 모으면 된다.

우리나라 총인구는 2000년에 4천6백80만명선을 웃돌 것이라는 추계다. 돌의 크기에 따라 규모는 달라지겠으나 평균잡아 벽돌 크기라면 4천6백80만개의 돌을 피라미드형으로 쌓을 경우 밑바닥 한변 길이 51m에 높이 51m가 된다.

▼ 반성과 경계의 표상으로 ▼

원뿔형이라면 밑지름과 높이가 각각 55m인 석탑이 될 것이다. 석탑밑에는 1천년 후에 열어볼 수 있게 타임캡슐을 묻어도 좋다.

갓 태어난 젖먹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4천6백80만 전국민이 빠짐없이 돌을 보내고 또 모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침내 이 일을 해낸다면 그로 인한 국민통합 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우리는 지구촌의 어느 민족보다도 의미있게 새로운 천년을 맞을 수 있다.

남중구<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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