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부형권/法도 감동한 「자구노력」

  • 입력 1998년 3월 31일 20시 20분


새 건물에 전기를 설치하는 전기공사업만 20년간 해온 S종합전기 대표 이모씨(44).

맨손으로 사업을 일으켜 온갖 어려움을 이겨낸 이씨였지만 국제통화기금(IMF)한파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최근 법원에 회사정리를 신청한 N건설 등 거래회사들이 잇따라 쓰러지자 공사대금 수십억원을 받을 수 없게 된 것.

함께 고생해온 직원들은 “월급 달라”는 말도 못하고 묵묵히 자기 일만 했다. 그러나 임시계약을 한 일용직 근로자들은 임금이 많이 밀리자 2월 이씨를 근로기준법위반 혐의로 서울지방노동청에 고발했다.

서울지방노동청은 지난달 30일 이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씨의 혐의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 말까지 직원 25명의 임금과 상여금, 일용직근로자 1백88명의 일당 등 모두 6억6천여만원을 체불했다는 것.

이씨는 그 와중에도 ‘죽으나 사나 내 갈 길은 이것뿐’이라는 각오로 자신의 전 재산을 내놓고 거래회사와 공사현장 등을 오가며 땀을 흘렸다.

이에 감복한 직원들은 당국에 탄원서까지 냈다.

이씨의 노력과 직원들의 정성이 법원을 감동시킨 것일까.

서울지법 최중현(崔重現)영장전담판사는 지난달 31일이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계약업체의 연쇄부도로 회사가 크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씨가 월급을 주기 위해 자신의 아파트등을 담보잡히며 눈물겨운 자구노력을 한 점을 크게 참작한다.”

최판사는 “수사당국도 이씨의 남다른 재기의욕에 감복했는지 수사기록에는 혐의내용보다 안타까운 사연이 더 자세히 적혀 있었다”고 말했다.

“실망하지 않고 열심히 살겠다”는 이씨의 ‘법정(法廷)다짐’을 지켜봤다는 한 법원 관계자는 “법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형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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