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교육 ⑫/부산 어린이창조학교]직접 「체험」이 우선

  • 입력 1998년 3월 30일 08시 39분


20일 오후2시 부산 수영구 남천1동에 있는 25평 규모의 미니학교인 ‘부산 어린이창조학교’.

정규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초등학생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면서 이 학교의 일과는 시작된다.

“여러분, 세상에는 나무가 몇종류 있을까요. 나무이름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아는대로 한번 말해 볼래요.”

“소나무 전나무.”

“느티나무….”

도시에서 자란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들이 뜻밖의 질문에 금방 말문이 막혔다. 아이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 더 이상 이름을 대지 못했다.

“생각이 잘 안나지요. 그러면 우리가락 자진모리로 목을 풀면서 나무이름을 배워 볼까요.”

교사 이미영씨(28)가 자진모리 장구 장단에 맞춰 듣기만 해도 재미있는 노래말을 흥겹게 불러나가자 아이들의 얼굴에는 재미있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가자가자 감나무, 오라오라 옻나무. 갓난아기 자작나무, 거짓말 못하는 참나무. 꿩의 사촌 닥나무, 동지섣달 사시나무. 따끔따끔 가시나무, 방귀 뀌는 뽕나무. 입맞추자 쪽나무, 엎어졌다 엄나무. 서울가는 배나무, 낮에 봐도 밤나무. 십리의 절반 오리나무, 앵돌아져 앵두나무. 칼에 베어 피나무, 자빠졌다 잣나무. 가다보니 가죽나무….”

“선생님, 나무이름이 그렇게 많아요. 이름이 너무 웃겨요.”

어린이들이 어느새 어깨까지 흔들며 흥얼흥얼 노래를 따라 불렀다. 금방 30여개나 되는 나무이름을 줄줄 외울 정도가 됐다. 이날은 야외학습도 있는 날. 교사와 학생들은 학교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광안리 해변까지 걸어가는 동안 방금 배운 노래를 흥겹게 불렀다.

“가자가자 감나무, 오라오라 옻나무….”

해변가에서 친구들과 모래성을 쌓으며 놀던 인근이(9)는 꽃게를 잡았다. 요한이(9)도 파도놀이를 하다 신발이 흠뻑 젖었지만 마냥 즐겁기만 했다.

나영이(9)는 “집에서는 숙제나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짜증이 나지만 해변가에서 놀다보면 정말 신이 난다”고 말했다.

어린이창조학교의 뿌리는 부산지역 시민운동단체인 ‘늘푸른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기존의 공교육만으로는 아이들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길러주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감한 주부 회원들이 모여 스스로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95년 남천동에 처음 문을 열었다. 학교교육과 연결시켜 학과공부를 심화하는 방과 후 교실과 취미교실을 겸한 대안교육을 하고 있다. 과외학원과는 비교가 안된다.

초등학교 1∼6학년생들을 대상으로 체험을 통한 글쓰기 과학실험교실 단소교실 독서교실 등 4개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방학 때는 성교육 찰흙 판화 만화 명상 연극도 가르친다. 비용은 월 3만∼4만원. 교사 4명이 가르치는 초등학생은 50여명.

체험교실은 아이들 스스로 보고 느끼는 다양한 체험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한 것. 단순히 글쓰는 기능을 가르쳐주는 곳이 아니다. 기본은 직접 해보는 것. 1년 동안 쓴 글을 모아 문집도 만든다.

과학실험교실은 실험을 통해 과학의 기초원리를 가르치는 만큼 아이들의 호기심이 대단하다.

이 학교의 큰 특징은 어린이와 어머니가 두 학교에서 함께 배운다는 점. 하나는 어린이창조학교, 다른 하나는 어머니창조학교로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 아이들을 올바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어머니들의 의식이 변해야 하고 자녀교육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어머니들의 공부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동화를 읽는 어른, 아이들 글쓰기 연구반, 가족탐사반 등 소모임 활동과 특강이 수시로 열린다.

어린이창조학교는 교실속에 갇힌 교육은 피하려 애쓴다. 그래서 야외수업이 많다. ‘지역공부’를 위해 인근 문화유적지나 우체국 도서관 견학도 하고 봄에는 황령산에서 쑥을 캐서 쑥떡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아이들을 구속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산만하다는 느낌도 갖지만 아이들의 창의성과 자발성을 강조하는 교육취지를 이해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래서인지 창조학교의 교실벽은 온통 아이들의 그림과 낙서 투성이지만 그림속에 드러난 동심의 세계를 보노라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창조학교라는 이름도 광명창조학교에서 따온 것. 많은 도움을 받은 광명창조학교가 지금은 없어졌지만 부산창조학교가 그 맥을 이어가면서 성남창조학교의 설립모델이 되는 등 대안교육 보급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미영씨는 “창조학교는 체험교육과 놀이를 통해 아이들의 닫힌 마음을 열어주고 더불어 사는 자세를 가르치는데 교육목적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이인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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