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한진수/토론문화 不在의 현장

  • 입력 1998년 3월 19일 20시 09분


민주시민으로서의 소양(素養)이나 의식의 부족 현상은 아직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환율이 오르자 달러를 사모으려는 사람이 나온다든지, 물가가 오를 것으로 보이면 사재기 소동이 벌어진다든지, 공중 화장실을 깨끗하게 사용하지 못한다든지,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택시 합승이 얼마전까지 횡행한 것 등… 모두가 민주적 문화적 선진국이 되지 못했다는 증거들이다.

며칠전 한나라당 강성재(姜聲才)의원이 국회 본회의에서 한 5분 발언은 이보다 더 심각한 정치문화의 후진성을 개탄하는 내용으로 그냥 넘겨서는 안될 대목이 있다. 강의원은 3월2일 국무총리 인준 표결 때 빚은 여야 의원간의 고함 삿대질 야유 폭언 멱살잡이의 추태를 보며 느낀 고뇌의 일단을 피력하며 여야 모두 자제할 것을 호소했다.

강의원은 두번 다시 그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느 의원이 고함을 질렀으며 욕설했는지 등 추태 연출 의원들의 언행을 국회 속기록에 분명히 남길 것을 제안했다. 아울러 TV생중계를 통해 무언의 압력을 가할 것도 제의했다.

강의원의 지적은 지엽적이거나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본질적이고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토론문화가 없고 토론질서가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국법질서가 올바로 세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의사당내에서 고함을 지르거나 발언권을 얻지 않고 단상으로 나올 경우 등원(登院)금지 10일, 욕설을 하거나 삿대질 멱살잡이 등 몸싸움을 벌인 의원은 등원 금지 1개월…’식의 벌칙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모든 경기에서 반칙에는 벌칙이 있듯이 국회에서의 반칙에도 제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속기록도 ‘장내 소란’‘정회해요 하는 의원 있음’이란 식으로 기록해서는 안된다. 장외에서 누가 무슨 소리를 어떻게 했으며 어느 의원과 어느 의원이 멱살을 잡는 등 몸싸움을 벌였다는 것을 분명히 기록해 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 속기록은 즉각 인터넷에 띄워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또 본회의와 주요 상임위를 KBS와 같은 공영방송이 회기내내 생중계, 국회의원들의 발언과 행동을 국민이 보고 들어 직접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럴 경우 우리 국회의 토론문화 수준도 한차원 높아질 것이다.

본사에 걸려오는 독자들의 전화도 “정치인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 질책해 달라”는 주문이 많다. 국난 극복을 위해 모든 부분의 개혁을 요구해 놓고 정작 그들은 아직도 구태의연한 작태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국회가 해야 할 일은 태산같다. 대량실업의 현장은 어떠하며 금융권의 부실은 왜 발생했는가. 세계적 언론재벌 머독이 우리나라에 들어온다는데 우리의 통합방송법은 어떤 식으로 언제까지 통과시켜 경쟁력을 기를 것이며 방송통신위원회의 위상과 권한은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공영방송의 방향은 어떠해야 하며 공영도 민영도 아닌 방송은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유통업자의 부도로 몸살을 앓고 있는 출판업계의 문제는 무엇인가 등… 밤을 새워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도 시간이 부족한 시점이다.

국회의원들 스스로 정치개혁 입법을 할 것으로 기대하기보다는 모든 민간단체들이 나서서 정치개혁 입법 청원을 꾸준히, 끈질기게 요구하는 길밖에 없을 것 같다.

한진수<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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