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차웅/새 내각의 병역 미필률

  • 입력 1998년 3월 4일 20시 49분


▼92년 미국 대선에서 클린턴후보를 괴롭혔던 것 중의 하나가 병역기피논란이었다. 당시 미국 언론은 그가 대학 재학중 월남전에 끌려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ROTC입대를 모색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즉각 이를 부인했으나 이 문제는 대통령후보의 자질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도 클린턴은 거뜬히 당선됐다.

▼지난번 우리의 대선에서 가장 큰 이슈는 뭐니뭐니 해도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 아들의 병역기피여부였다. 결과적으로 이후보가 낙선한 가장 큰 원인으로 아들의 병역시비를 꼽는 사람이 많다. 이 분석이 맞는다면 이는 우리 국민이 지도자에게 얼마나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요구하는지를 말해준다. 우리의 수준이 미국민들보다 높으면 높았지 결코 낮진 않다.

▼3일 임명된 새 정부의 초대내각 장관 중 2명의 여성장관을 제외한 15명 가운데 무려 6명이 병역미필자라는 보도다. 새 내각의 병역미필률이 40%나 되는 셈이다. 이는 일반인의 평균 병역면제율 8.2%에 비해 5배나 높은 수치다. 물론 당사자들은 ‘시력미달’에서 ‘황달’ 등등 갖가지 미필사유를 대고는 있다. 그러나 일반 국민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뻔할 뻔자 아니냐” “이회창후보 아들의 병역미필을 그렇게 물고늘어졌던 사람들이…”라는 반응도 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누가 뭐래도 경쟁 후보 아들의 병역미필시비 덕을 톡톡히 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김대통령이 손수 뽑은 초대내각 장관들의 병역미필률이 40%나 된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병역미필사유를 꼼꼼히 따져보지 않고 임명했다면 더욱 문제다. ‘남의 눈의 티끌’은 말하면서 ‘내 눈의 대들보’는 애써 못 본 체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김차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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