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혁의 사이버월드]「양날의 칼」 전자우편 광고

  • 입력 1998년 2월 25일 20시 05분


군사용으로 만들어진 뒤 대학과 연구소에서 학술적인 목적으로 이용되던 인터넷이 기업의 치열한 경쟁의 장으로 바뀐 것은 불과 몇년 전의 일이다. 인터넷이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된 과정은 자연스러웠지만 반발도 있었다. 논쟁에 불을 지핀 이는 인터넷 전문가가 아니라 이민법을 전문으로 하던 로렌스 캔터와 마사 시겔 변호사 부부였다. 이들 부부는 미국에 이민오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빠른 방법으로 미국시민이 되는 방법을 상담해 주고 있었다. 이들은 PC통신만 이용해오다 94년 인터넷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전세계인이 한 곳에 모여 토론하고 글을 쓰는 인터넷 뉴스그룹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은 그해 6월에 있을 예정이었던 미국 시민권 추첨서비스를 6천여개에 이르는 뉴스그룹에 안내하고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광고를 게시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인터넷 뉴스그룹의 경우 주제별로 게시판이 나눠져 있어 해당 주제와 관련되지 않은 글을 게시판에 등록하는 것은 금기다. 별다른 생각없이 글을 썼던 이들 부부는 다음날 전자우편을 확인해 보고 기겁을 했다. 전세계로부터 쏟아진 전자우편으로 인해 정작 그들의 전자우편 서비스는 거의 이용 불능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전자우편은 주로 네티켓(네티즌의 에티켓)을 지키지 않았다고 항의하는 내용이 많았으나 구체적인 정보를 요구하거나 서비스를 신청하는 편지도 적지않았다. 이후 뉴스그룹에서는 이러한 광고행위와 관련,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인터넷의 상업적인 활용에 대한 본격적인 시도가 시작된다.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로렌스 캔터와 마사 시겔 부부가 짧은 몇 개월동안 이민 서비스로 얻은 경제적인 이득은 8천만원 정도였다. 이후 이들은 ‘정보고속도로에서 큰 돈을 버는 법’이란 책을 쓰고 ‘사이버셀(http://www.cyber.sell.com)’이란 인터넷 사이버 마케팅 회사를 설립했다. 일반편지로 보내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효과가 뛰어난 전자우편은 광고에 대한 반응도 바로 얻을 수 있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효과 덕분인지 최근 국내에서도 전자우편 광고가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무분별한 전자우편 광고는 반발을 사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유의해서 적절한 광고방법을 찾아야 한다. 안진혁(나우콤 C&C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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