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낙연/印尼의 「대충대충」

  • 입력 1998년 2월 15일 21시 01분


인도네시아에서 자주 쓰이는 말에 ‘키랴 키랴’가 있다. ‘대충 대충’이란 뜻이다. 2억2천여만명의 인구, 2천여개의 섬으로 이뤄진 다민족 다종교 국가인데다 날씨마저 무덥기 때문일까. 심지어 공문서에도 간혹 ‘키랴 키랴’가 등장한다. 대충 보고하라는 식이다. 그런 인도네시아가 지금 심상찮다. 시민들의 시위는 격렬해지고 당국은 발포해 유혈사태로 치달았다. ▼배경은 정경(政經)복합적이다. 시위대는 생필품 부족과 물가폭등에 항의하면서 ‘수하르토 하야’를 외친다. 수하르토대통령은 1965년 육군소장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이듬해 정부를 장악한 이래 32년간 집권했다. 77세인데도 3월 대선(大選)에서 7선에 도전, 성공하면 2003년까지 재임한다. 그 일족은 국내 중요산업을 장악해 재산이 ‘키랴 키랴’ 3백억달러나 된다고 미국은 추산한다. ▼미국은 어정쩡하다. 65년 미국은 용공노선의 수카르노대통령을 몰아내려는 반공주의자라는 이유에서 수하르토의 쿠데타를 지지했다. 그러나 이제는 수하르토의 국내 통제력을 의심하고 인도네시아의 민주화도 기대한다. 같은 IMF관리국가인데도 한국 태국에 비해 인도네시아 지원에 미국이 덜 적극적인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인도네시아의 경제붕괴를 원치 않는다. 파급을 우려해서다. ▼우리도 착잡하다. 인도네시아의 민주화를 바라지만 그쪽에 우리 기업들의 돈이 많이 물려 있다. 인도네시아사태는 ‘강 건너 불’같지 않다. 우리에게도 대량실업과 물가앙등이 현실로 닥쳤다. 인도네시아 대선전망은 엇갈린다. 시위에도 불구하고 현지에서는 ‘키랴 키랴’로 끝나리라는 예측도 나온다. 다급해지면 현지 이슬람교도는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를 외친다. 결국 인도네시아는 그들의 신(神)의 뜻대로 되는 것일까. 〈이낙연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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