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머독의 한국 진출

  • 입력 1998년 2월 15일 21시 01분


내년 7월부터 국내 방송문화환경은 말그대로 획기적인 전환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국내 통신회사인 데이콤이 세계적 미디어 재벌인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퍼레이션사와 손잡고 75개 채널의 위성방송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현재 국내 시청자들이 볼 수 있는 채널이 케이블TV 29개를 비롯, 공중파 TV와 외국위성방송을 통틀어 40개가 채 안되는 상황과 비교하면 한 방송사에 의한 75개 채널 방송은 엄청난 변화다. 데이콤측은 국내 케이블TV와 독립프로덕션 등을 컨소시엄에 참여시키고 뉴스코퍼레이션사 산하 방송사들이 제작한 프로그램들을 방영하면 다채널 방송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세계 미디어계의 황제’로 불리는 머독은 스포츠 중계로 유명한 폭스TV와 홍콩의 스타TV, 20세기폭스영화사 등을 소유하고 있어 시청자들은 국내 프로는 물론 세계적 프로들을 ‘포식’하게 될 전망이다. 특히 데이콤위성에 의한 다채널 위성방송은 홍콩과 일본 위성TV의 전파 월경(越境)에 KBS의 2개 위성채널로 맞서온 현실을 감안할 때 긍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번 머독의 국내 진출 소식에 재계나 방송계는 우선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차기 정부가 1백대 과제중 하나로 꼽은 ‘세계화시대에 부응한 선진방송체제 구축’ 항목은 위성방송 실시를 위해 통합방송법을 조기 제정토록 하고 있다. 그런데도 법도 제정하기 전에 차기대통령이 데이콤과 머독에게 위성방송 허가를 약속하는 듯한 모양새를 보인 것은 일의 선후가 바뀌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더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민회의는 재벌의 위성방송참여를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또다른 문제점은 머독의 한국 진출이 국내 방송계의 생존이 걸린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뉴미디어의 총아로 떠올랐던 케이블TV는 출범 3년동안 8천억원의 누적 적자를 냈다. 공중파 TV도 광고 부족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우리의 경제력이 기존의 방송계조차 부지하지 못할 만큼 취약한데 거대 위성방송을 감당해낼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데이콤이 민간기업이긴 하지만 케이블TV와 지역 민방에 대한 과투자로 해당 기업은 물론 국민 경제에도 주름살이 왔던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밖에 외국문화의 무차별 안방유입도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외국 자본 참여에 의한 위성방송은 외국자본의 도입과 방송의 개방화 추세에 따라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문제점도 적지 않게 지적되고 있는 만큼 정교한 방송법 제정을 통해 신중하게 추진돼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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