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하상묵/공무원 감축보다 재배치를

  • 입력 1998년 2월 12일 08시 27분


정부 조직개편과 함께 공무원 감축을 추진키로 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묘안을 찾지못해 고심중이라 한다. 그러나 고심할 필요가 없다. 공무원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불합리한 인력배치에 있기 때문이다. 인력 재배치로 문제를 푸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나라 공무원 수는 현재 93만2천여명으로 국민 48.9명당 1인꼴이다. 외국에 비하면 매우 적은 편이다. 북유럽 국가들은 대체로 국민 6,7명당 공무원 1인, 프랑스와 미국은 14명당 1인, 독일은 17명당 1인, 일본은 30.1명당 1인이다. 그런데도 우리 나라 공무원 수는 적어 보이지 않는다. 인력배분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본부행정 앉은뱅이행정 양반행정에 별도정원 때문이다. 중앙집중식 행정 탓에 중앙부처 소속기관 시도 시군구를 막론하고 본부에 너무 많은 공무원들이 몰려있다. 앉은뱅이처럼 사무실만 지키면서 정책수립 및 집행까지도 탁상에서 하고, 국민을 오라가라 하는 공무원이 너무 많다. 직원 몇 명 거느리고 뒷자리에 앉아 도장만 찍는 높은 분들이 너무 많다. 장(長)자리를 지나치게 많이 만들어 놓은데다, 일이란 모름지기 아랫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양반행정 탓이다. 높은 자리가 그렇게 많아도 막상 앉을 자리가 없어 밖으로 떠도는 고급 공무원들이 너무 많다. 국내외 연수, 파견 등의 명목으로 별도 정원을 상위 직급 위주로 잔뜩 늘려 놓은 탓이다. 정부가 일을 제대로 하려면 공무원을 전진 배치해야 한다. 민원인을 친절히 안내하고 돕는 공무원, 수질보호를 위해 물줄기를 따라 누비는 공무원, 불량식품과 매점매석 단속을 위해 시장 구석구석을 살피는 공무원,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골목어귀를 지키는 공무원, 철저한 안전진단을 위해 공사현장을 발로 뛰는 공무원이 절대 부족하다. 본부 인력, 내근 인력, 상위직 인력을 대거 일선과 현장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고통스런 선택과 재교육, 환경적응이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어려움도 감원과 실직의 고통보다는 나을 것이다. 공무원을 감축하기 보다는 재배치함으로써 차제에 민생행정 현장행정 서비스행정을 강화하는 것이 이 사회와 정부 공무원 모두에게 보다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하상묵<한국행정연구원 주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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