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된장정석」 배우러 온 러시아 처녀-총각

  • 입력 1998년 2월 12일 08시 27분


스베틀라나 쉭시나. 나이 열여덟의 러시아 처녀로 애칭은 스페이타. 알렉산드르 디너슈타인. 동갑내기 러시아 총각. 애칭 샤샤. 한국바둑을 배우러 러시아에서 날아온 사람들이다. 잠시 머물며 한국바둑을 배웠던 사람들은 여럿이 있었지만 이들 같은 본격파 바둑유학생은 처음. 지난해 2월 낯설고 물 선 한국으로 왔으니 벌써 1년. 눈 감으면 고향, 부모님, 친구들이 선하다. 눈시울이 적셔진다. 하나 그러고 있을 수만은 없다. 더 갈고 닦고 배워야 한다, 이겨야 한다. 그런 각오 속에 보낸 1년이었다. 미모의 러시아 아가씨 스페이타는 명인바둑교실(서울 강동구 천호동) 최화길(崔和吉)원장의 집에서 기숙하며 배우고 있다. 내성적이고 말 수가 적어 샤샤보다 더 외로움을 탄다. 한국말을 배우고는 있지만 바둑만큼 썩 늘지 않는다. 말귀정도 알아듣는 수준. 서투른 언어는 그를 더욱 바둑의 세계로 이끈다. 스페이타는 바둑교사인 아버지(아마4단)의 손에 이끌려 바둑을 시작해 96년 유럽여자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화려한 경력의 보유자. 일본기원에서도 초청장이 날아왔다. 결국 그녀는 한국행을 택했다. 이유는 이창호가 한국에 있었기 때문. “한국에 오기 전에는 한국이나 한국바둑에 관해 잘 몰랐어요. 한국바둑을 제대로 배워 러시아에 한국바둑의 씨앗을 퍼뜨릴 거예요.” 스페이타는 지난해 9월 대한생명배 세계여자아마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차지, 기염을 토했다. 최원장은 “앞으로 2∼3년이면 프로입문”이라고 낙관한다. 샤샤는 여드름이 아직 가시지 않은 다소 무뚝뚝한 표정의 총각이다. 한국기원 양천지원(서울 양천구 목동) 임항재(任航宰)지원장의 뒷바라지를 받고 있다. 임씨의 성(姓)까지 물려받았다. 샤샤의 공식 일과는 기숙사에서 오전 10시반 기원으로 나와 밤10시반까지 계속된다. 종일 바둑과 씨름한다. 바둑말고는 볼 일이 없어 외출은 아마추어 기전에 몇차례 참가한 게 전부이고 서울 구경이래야 롯데월드 나들이가 고작이다. “마늘이나 고추는 싫어요.” 샤샤에게는 바둑보다 언어와 음식이 어려운지 모른다. 특히 매운 음식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좋아하는 한국요리는 삼계탕. 러시아에도 유사한 요리가 있기 때문. 간혹 양식은 즐긴다. 언어도 적응하기 힘들다. 한글을 웬만큼 읽고 쓸 수 있지만 말은 입안에서만 뱅뱅 돌 뿐이다. 바둑에 대한 열정이 보통이 아니다. 프로 입단은 당연하고 9단이 아니면 귀국하지 않겠다는 각오. 샤샤와 스페이타는 1월까지만 해도 양천지원에서 함께 배웠다. 이국땅에서 알게 된 사이이지만 같은 처지여서 적잖게 서로 위안이 되었는데 아쉽기만 했다.임원장 혼자서 둘을 뒷바라지하기는 역부족이었던 탓이다. 스페이타가 결국 짐을 꾸려야 했다. 한 바둑계 원로는 “실질적인 한국바둑유학 1호생인 이들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면 한국바둑의 우월성을 세계에 과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영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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