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정몽준/지구촌시대 함께 살아가는 길

  • 입력 1998년 2월 3일 20시 28분


요즈음 나라가 어렵다. 나라가 어렵다보니 현재의 상황에 대한 책임 문제도 거론된다. 나라가 이렇게 된 것이 김영삼대통령의 잘못이냐, 경제 관료나 대기업의 잘못이냐, 근로자의 책임은 없는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청문회가 필요한 시점이다. ▼ 외환위기 주기적으로 반복 ▼ 외환위기는 우리에게는 생소한 경험이지만 전세계적으로 보면 주기적으로 오는 것이다. 멕시코의 경우 82년과 94년 두차례의 외환위기를 겪었다. 우리는 앞을 대비하는 의미에서도 현재의 외환위기 원인과 배경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 경제가 어려운 것은 우리나라가 대외신용을 잃었기 때문이다. 대외신용의 상실은 우리에게 많은 책임이 있다. 우리는 바깥 사람들의 생각, 세계의 분위기를 너무 몰랐던 것이다. 얼마전 이탈리아에 갔을 때, 유럽 자동차협회 회장직도 맡고 있는 피아트 그룹의 회장을 만난 일이 있다. 그는 “만일 한국 자동차 업계의 확장 계획이 실현되면 유럽 자동차 회사의 절반은 문을 닫아야 할 것이며 그 첫째는 피아트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한국의 기업을 단순한 경쟁자가 아니라 기존의 세계 경제 질서를 뒤흔들면서 각국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로 보는 것이다. 우리의 경제 규모는 속칭 세계 11위이다. 세계 11위의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라면 특정 산업 분야를 확장할 때 다른 나라의 입장도 조금은 고려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구촌 시대에 살면서 다른 나라와 함께 번영을 나누는 지혜가 부족했던 것 같다. 냉전 시대에는 군사적 억지전략(Military Deterrence)을 통해 세계평화가 유지되어 왔다. 북대서양조약기구와 같은 각종 집단안전보장제도를 통한 군사전략의 상호협의가 그 실례이다. 탈냉전 시대에는 G7이나 OECD 등의 기구를 통해 거시경제정책에 대해 상호 협의하는 경제적 억지전략을 바탕으로 세계는 공존의 길을 찾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국제관계에서 군사적 집단안전보장 체제의 중요성은 알았지만 경제안보의 상호의존성은 간과했던 것이다. 구소련이 붕괴하면서 세계는 미소의 양극 체제에서 미국 주도의 일극 체제로 변모했다. 이 과정에서 세계의 평화는 실현되었지만 번영을 얻는데는 성공하지 못한 것 같다. 오히려 많은 나라에서 생활 수준이 후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재 미국 주도의 일극 체제는 바로 이러한 딜레마에 봉착해 있다. 미국이 압도적인 힘으로 각국의 산업과 기업들을 흡수 통합해가는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10년 전 영국에서 빅뱅이 있었을 때, 상위10대 증권사 중 8개사가 유럽과 미국의 증권사에 흡수 합병되었다. 멕시코에서는 IMF체제를 거치면서 정보 통신 분야 등에서 1천5백여개의 기업들이 주로 미국자본의 손에 넘어갔다. 최근 아시아의 경우에는 이런 시각도 있다. 동남아시아 경제권에서는 화교자본이 중요하고 이들 화교 자본은 중국 본토의 경제성장에 큰 역할을 했는데 동남아의 경제 위기로 인해 화교 자본의 중국 본토에 대한 투자가 위축되고 있다. ▼ 美주도 일극체제의 딜레마 ▼ 동남아의 경제위기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초래된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은 이런데서 연유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 동남아시아의 경제위기와 관련하여 이러한 시각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아시아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은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확고한 헤게모니를 잡고 있다. 미국이 전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책임져야 하는 체제인 것이다. 결국 세계의 보다 많은 나라에 평화만이 아니라 번영을 동시에 가져다 줄 때 미국 주도의 일극 체제는 안정될 수 있을 것이다. 정몽준(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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