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617)

  • 입력 1998년 1월 19일 07시 46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85〉 그뒤 나는 수염과 눈썹을 깎고 검은 옷을 걸치고 두루 알라의 대지를 편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정처없는 나의 발길은 알라의 인도를 받아 바그다드에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오늘 저녁 때의 일이었습니다. 바그다드에 도착하긴 했지만 갈 곳을 몰라 배회하고 있던 중 우연히도 두 분의 탁발승을 만났고, 그분들께 다가가 나는 인사를 했습니다. 두 분 스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보니, 운명의 장난이었던지 우리 세 사람은 공교롭게도 똑같이 애꾸눈이였습니다. 주인님, 이것이 내가 왼쪽 눈을 잃어버린 내력이며, 눈썹과 수염을 깎게 된 사연입니다. 세번째 탁발승이 이야기를 마쳤을 때는 벌써 날이 훤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크게 감동을 받은 여주인은 말했다. “좋아요. 당신도 용서해드릴게요. 당신뿐만 아니라 나머지 세 분도 용서해드릴테니 돌아가세요. 나머지 세 분의 이야기도 들어봤으면 좋겠습니다만 벌써 날이 밝아오고 있으니 어쩔 수가 없네요.” 이렇게 하여 교주 일행과 세 사람의 탁발승, 그리고 짐꾼은 세 여자들의 집에서 풀려났다. 거리로 나오자 교주는 탁발승들에게 말을 걸었다. “아직 날도 밝지 않았는데 당신들은 어디로 갈 거요?” “글쎄올시다.” “그럼 우리집으로 가시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말하고 난 교주는 쟈아파르에게 속삭였다. “이 사람들을 그대 집으로 데리고 갔다가 날이 밝으면 데리고 오게. 이 사람들의 기담을 연대기에 기록해야겠으니까.” 쟈아파르는 교주의 분부대로 세 사람의 탁발승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갔고, 교주는 왕궁으로 돌아왔다. 왕궁으로 돌아온 교주는 세 사람의 탁발승의 그 기구한 이야기가 잊히지가 않았다. 또, 세 여자들과 두 마리의 검은 암캐에 얽힌 사연이 궁금하여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날이 밝고 조정의 중신들이 모이자 교주는 쟈아파르에게 분부했다. “어젯밤에 만난 세 여자와 두 마리의 암캐, 그리고 탁발승들을 모두 데리고 오도록 하라.” 교주의 명령에 따라 쟈아파르는 그들 모두를 데리고 왔다. 교주 앞에 무릎을 꿇은 세 여자를 향해 쟈아파르는 말했다. “그대들 앞에 계신 분이 누군지 아느냐? 이분은 바그다드의 주인이신 하룬 알 라시드 교주님이시다. 그대들은 지난 밤 이분에게 무례한 짓을 하였다.” 그때서야 세 여자는 지난 밤에 상인으로 변장을 하고 방문했던 세 사람이 교주 일행이라는 사실과 그들에게 무례한 짓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 와들와들 몸을 떨었다. 그러한 그녀들에게 쟈아파르는 말했다. “그대들이 교주님께 행한 괘씸한 짓은 용서할 수 없으나, 그보다 앞서 그대들이 베푼 친절을 생각해서, 그리고 그대들이 한 무례한 짓도 따지고보면 이분이 누군지 몰라서 한 것이니까 용서해주기로 하겠다. 그 대신 그대들이 숨기고 있는 사연을 거짓없이 교주님께 말씀드리도록 하라. 그렇게 하면 교주님도 마음이 풀리실 것이다.” 그러자 세 여자 중 제일 나이가 위인 여자가 앞으로 나섰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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