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612)

  • 입력 1998년 1월 14일 08시 00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80〉▼ 그러자 다른 처녀 하나는 내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 울면서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사랑의 약속을 지켜만 주신다면 정원의 꽃들은 더욱 곱게 피어나고, 새들은 기쁨의 합창을 하리. 오! 우리 사랑의 약속 지켜만 진다면 달빛은 더욱 찬란하고 별빛은 더욱 아름다워 우리의 밤은 더욱 달콤하련만. 그러나 심술궂은 운명의 장난으로 당신의 맹세가 깨어지기라도 한다면, 오! 그 이별의 고통을 어찌하리오? 이런 노래를 부르며 울고 있는 처녀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나는 말했습니다. “알라께 맹세코, 마흔번째 문은 열지 않겠소. 어떤 일이 있어도 그것만은 열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이렇게 말하며 나는 그 예쁘고 사랑스러운 마흔 명의 처녀들과 일일이 작별을 했습니다. 처녀들은 저마다 손을 흔들며 떠나갔습니다. 그 귀여운 처녀들은 나를 혼자 남겨두고 새처럼 날아가버린 것입니다. 처음에 나는 그까짓 사십 일이야 견디지 못하겠는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녀들이 떠나고 혼자 남았을 때 내가 느낀 적막감은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세상이 깊은 정적속으로 가라앉는 것만 같았습니다. 나는 텅 빈 궁전 안을 일없이 왔다갔다 했습니다. 새처럼 재잘거리던 처녀들이 떠난 궁전 안은 적막하기만 했습니다. 나는 또 그녀들과 산책하곤 했던 정원을 혼자 거닐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름답기만 하던 정원도 이제 내 눈에는 을씨년스럽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더욱 견딜 수 없는 것은 밤이었습니다.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들자 정말이지 나는 고독감으로 인하여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그 고독감을 잊어버리기 위하여 나는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습니다만 통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 사랑스러운 처녀들의 눈빛과 미소, 그녀들의 향기, 그녀들의 촉감, 그녀들의 웃음소리, 내 귓전에다 대고 속삭이는 그녀들의 속삭임과 따뜻한 입김, 그녀들의 젖가슴과 젖꼭지, 그녀들의 넓적다리, 내 품에 안겨 바둥거리던 그녀들의 몸짓, 할딱거리는 그녀들의 숨소리, 신음소리, 흐느낌소리, 그녀들과 함께 나눈 쾌락의 순간들이 자꾸 떠올라 나는 텅빈 침상 위를 혼자 뒹굴어야 했습니다. 견디다 못한 나는 벌떡 침상에서 일어나 앉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들이 남기고 간 흔적, 가령 그녀들이 아끼던 물건이라든지, 그녀들이 벗어놓은 속옷이라도 찾기 위하여 침실 구석구석을 뒤져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뒤져보아도 나에게 위로가 될 만한 그녀들의 흔적은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오, 야속한 사람들! 그대들은 내 가슴에 그리움을 남겨놓은 것 외에 다른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았군.” 이렇게 말한 나는 문득 그녀들이 내게 주고간 열쇠꾸러미를 떠올렸습니다. 그걸 떠올리자 나는 곧 달려가 첫번째 방문을 열었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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