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이어령/찻잔의「손잡이」혁명

  • 입력 1997년 11월 23일 19시 53분


근대 이전의 찻잔에는 손잡이가 달려 있지 않았다. 그래서 뜨거운 차를 마시기 위해서는 찻잔을 두껍게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그 모양은 투박해지고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거기에 손잡이를 붙이는 발상이 생겨나자 인류가 천년 이상이나 써온 그 찻잔의 모양이 하루 아침에 바뀌게 된다. 찻잔 안의 폭풍이 아니라 찻잔 자체의 모양에 불어닥친 바람이다. 찻잔을 직접 손으로 잡지 않게 되자 찻잔의 두께는 종잇장처럼 얇아지게 되고 그 무게는 가벼워진다. 잔 한개 만들던 재료로 열개 정도를 만들 수 있으니 생산성도 경제성도 높아진다. 무엇보다도 손잡이 모양으로 찻잔의 형태 자체가 바뀌면서 다양한 디자인의 시각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찻잔의 「손잡이」는 기능적인 실용성만이 아니라 생산성과 경제성 그리고 장식적인 예술성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더욱 재미난 것은 찻잔에 제일 먼저 손잡이를 달 생각을 해낸 것은 프랑스 사람이었지만 그것을 상품으로 개발하여 세계 시장에 퍼뜨린 것은 일본 사람이었다. 일본의 근대화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찻잔에 단 손잡이는 바로 찻잔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은 것이다. ▼ 패러다임 변화의 결과 ▼ 우리 주변에는 찻잔의 손잡이처럼 패러다임의 변화를 일으켜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차는 뜨거워야 하는데 그 잔은 뜨거워서는 안된다. 새로운 발상 없이 그러한 모순을 없애려고 할 때에는 찻잔의 두께만을 더욱 두껍게 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경험했던 개혁이 대체로 그런 것들이었다. 교육개혁도 그러한 사례 중 하나가 아닌가. 입시지옥을 면하기 위해서 개혁한 것이 고등학교의 평준화였다. 그런데 대학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경쟁원리를 도입하여 대학별 학과별 등급평가제를 실시하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는 더불어 사는 평등주의 원리로 되어 있는데 대학은 무한경쟁의 자유주의 원리를 적용하고 있다. 그래서 중학교 고등학교 입시경쟁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대학입시경쟁이 유치원에서부터 시작되는 최악의 사태를 벌이고 말았다. 워털루 전쟁의 승리는 이튼 교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말이 한국으로 들어오면 대학입시의 합격은 유치원 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 입시교육 발상전환을 ▼ 논술고사제도의 새 입시개혁은 암기와 주입식 수험준비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논술도 벼락치기로 가르치는 학원이 생겨나고 족집게 과외선생이 위력을 떨치게 된 것이다. 전천후 문례를 만들어 미리 외우고 다니는 수험생들도 많다. 독서를 하라고 생긴 제도인데 책방에 가면 논술준비 참고서만이 즐비하게 쌓여 있다. 논술은 이렇게 써야 한다는 획일적인 생각으로 수천 수만의 수험생 머리를 붕어빵처럼 구어내고 있다.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입시개혁이 아니라 경마장화한 대학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드러커도 지적한 적이 있지만 21세기에는 오늘날과 같은 대학은 무의미한 존재로 바뀔 것이다. 오히려 학교교육의 비중보다 평생교육이 더 무거워지는 추세를 보인다. 대학의 투박하고 무거운 몸통에 손잡이를 달아주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나면 경마장으로 바뀐 대학의 현실에도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더이상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를 따지지 않고 살아가는 세상이 말이다. 이어령(이화여대 석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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