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순덕/우리들 마음속의 「파파라치」

  • 입력 1997년 9월 1일 20시 50분


올 취직시험에는 「파파라치(Paparazzi)」를 묻는 상식문제가 나올 지도 모른다. 유명인의 사진을 찍어 파는 프리랜서 사진사들을 일컫는 파파라치가 끝내 한때 한 나라의 왕세자비였던, 살아 있는 동화속의 신데렐라였던 다이애나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다이애나는 불화와 불륜 별거 이혼에서 끝내 죽음으로 이어지는 동화보다 진한 삶을 살다 갔다. 그 서른 여섯, 짧은 삶의 극적인 편력을 은밀하게 사진들로 우리에게 전해왔던 게 파파라치였다. 어쩌면 훔쳐보기 엿보기 욕구는 모든 이들의 잠재된 심리인지도 모른다. 영화와 사진 소설 그리고 대중매체도 일종의 훔쳐보기 도구들이다. 현실이 소설보다 더 독하고 극적인 스토리를 지니는 세상이 되면서 사람들은 더 짜릿한 훔쳐보기에 빠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파파라치는, 목숨을 걸고 그 일을 대신 해내는 그들은 이시대 사람들의 용병(傭兵)이 아닐 수 없다. 오토바이로 쫓고 때때로 헬리콥터나 잠수함까지 동원한다는 그들의 전투적인 프라이버시 훔치기에서 우리는 영화속의 용병처럼 무지막지하고 용맹스런 면모를 읽는다. 돈을 받고 목숨을 거는데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서, 도덕이나 윤리는 뒷전이라는 것도 닮은꼴이다. 그 용병들의 사진을 비싼 값에 사주는 잡지와 신문들, 그리고 그 사진들을 사서 보는 「대중」. 파파라치가 이탈리아어라 해서, 다이애나가 파리에서 죽었다 해서 우리와 결코 무관하기만 한 걸까. 최근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방송사 몰래카메라나 「양심 냉장고」를 내걸고 시청자들이 웃으며 보는 앞에서 사람들의 양심을 테스트하는 TV프로, 그리고 여자화장실과 탈의실에 설치됐던 음험한 비밀카메라, 그리고 십대가 만든 「빨간 마후라」를 구하지 못해 안달하는 어른들은 또다른 모습의 작은 「파파라치」가 아닐까. 우리들 가슴속에, 우리 문화속에 똬리 튼 「파파라치」를 생각해 본다. 김순덕(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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